I. 머리말
II. '제천지'와 동성왕
III. 웅진시기 '제천지'의 변화
IV. 맺음말 - '제천지' 변화의 의미
요약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성시대의 동명묘(東明廟) 제사는 사비시기의 구태묘(仇台廟)로 변화하고, '제천지(祭天地)'는 '제천급오제지신(祭天及五帝之神)'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웅진시대에는 동명묘에 제사지낸 기록은 없고 '제천지'한 기사만 동성왕대에 나온다. 웅진시기에 국가제사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웅진으로 천도한 후 동성왕 5년(483)까지의 지배세력은 한성시대의 귀족들이 그대로 중심으로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동성왕 6년부터는 한성시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성씨들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씨(沙氏), 연씨(燕氏), 백씨(백氏) 등이 그들이다. 동성왕이 이러한 새로운 귀족을 등용시킨 것은 기존 귀족들의 전횡을 방직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점에서 백제 왕실은 새로운 귀족 세력과의 타협, 내지는 공존을 위한 예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한 예우란 정치・경제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사상적인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기왕의 '천(天)'이 '오제신(五帝神)'으로 분화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한다. 이때 왕실은 '천'에 해당되고 귀족은 '오제'에 대응된다고 생각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