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삼국의 衣冠制에 대한 검토
Ⅲ. 의관제와 관등제, 신분제의 관계
Ⅳ. 관료제 운영 기제로서의 관등제와 신분제
Ⅴ. 맺음말
요약
본고에서는 삼국의 관료제 운영의 특징을 의관제 및 관등제, 신분제의 연결고리 속에서 살펴보았다. 국가의 공식행사에 참여하는 관료들이 서열에 따라 착용하는 冠에 대한 문헌 기록과 고고학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삼국의 衣冠制에 대해 먼저 검토하고, 삼국이 관료제를 운영해가는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관등승진 상한제와 함께 신분제의 폐쇄성 완화 조치에 주목하였다.
등승진 상한제와 함께 신분제의 폐쇄성 완화 조치에 주목하였다.
고구려의 의관제에 관한 기록은 가장 소략한 편이나, 冠制를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 특징적이며, 관등의 높낮이에 따라 관의 형태나 관모의 색깔이 결정되었다. 신라는 色服志의 의관제 규정이 어느 시기에 해당되는 것이냐를 두고 논란은 있지만, 관등에 따라 복색이 정해져 있었으며 冠制는 관등과 관직의 이원적 기준이 적용되었다. 백제는 관등을 기준으로 해서 세 부류로 복색을 정하고, 그 내부에서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복색 이외에도 帶色, 冠色, 冠飾 등을 통해 차이를 가시화하였다. 관료 개개인의 서열을 외부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관료사회의 질서를 정립하는 것이 의관제가 고대사회에서 가지는 중요한 기능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관료제의 운영과 관련해서는 삼국이 관등제 및 신분제를 운영해나감에 있어서 보이는 유사한 양상에 초점을 두었다. 관직에 대한 관등 규정인 1관직 복수관등제는 복수의 관등 중 최상위의 관등이 신분별로 사여될 수 있는 관등의 상한과 일치하기 때문에 관등 승진 상한제와 맥락이 통한다. 각 신분별로 수여받을 수 있는 관등군 내에서 개인의 능력을 인정해주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신분층이 수여받을 수 있는 관등의 범주에 한정된 것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신분의 고착화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관등의 수여에 신분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삼국별로 관등제의 정비시기에 차이가 있고, 정비의 과정도 동일하지는 않았겠지만, 관료제 운영에서 신분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신분 내에서 수여받는 관등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히 신분 이외에도 가문의 역량이나 개인적 능력이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같은 신분층이 받을 수 있는 官等群 내에서 가문의 역량이나 개인의 능력이 발휘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1관직 복수관등제나 관등 승진 상한제는 폐쇄적인 신분제 속에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