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왜
Ⅲ. 『삼국사기』에 보이는 왜
Ⅳ. 『송서』왜국전에 보이는 왜의 실체
Ⅴ. 맺음말
요약
사료 상에 나타난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활약한 것으로 되어 있는 왜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일본서기』에 임나경영과 관련해서 등장하는 왜로 그들의 실체는 백제인들이다. 가야를 경영하던 백제인들이 도일․정착한 후 자손들이 조상의 왜인설을 주장함으로써 그 조상들의 활약이 왜인으로서의 활약인 것처럼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369년 가라 7국을 평정하고 382년에는 대가야를 구원한 백제장 목라근자의 아들 목만치가 도일하여 소아만지가 된 후 그 자손들이 소아만지의 왜인설을 주장함으로써 목라근자의 활동이 일본천황의 명을 받아서 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일본열도에서 온 왜로 『송서』왜국전이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왜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들은 백제의 대고구려전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왜에서는 백제의 대고구려전을 지원한 후 한 세대쯤 흐른 438년 왜왕 珍 시대에 백제를 지원하던 사실을 왜의 입장에서 왜를 주체로 생각하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왜가 백제의 대고구려전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거쳤던 백제․신라․임나․가라 및 진한․마한등에 대한 군사권을 자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하는 상황에서 백제의 구원요청을 받은 武는 대내외적으로 그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서 珍이 자칭했던 한반도 남부에 대한 제군사권에 더해서 백제의 영향 하에 있던 가야제국을 의미하는 ‘加羅’까지도 추가한 ‘使持節都督 倭 百濟 新羅 任那 加羅 秦韓 七國諸軍事 安東大將軍 倭國王’이라는 작위까지도 자칭하게 된다. 그리고 왜에 머물고 있던 백제 수뇌부의 영향으로 백제의 감정을 대신하는 ‘而句驪無道’라는 표까지 송에 보내게 되는 것이다.
「광개토왕릉비문」이나 『삼국사기』와 『송서』 등에 보이는 일본열도에서 온 5세기의 왜는 『일본서기』에 백제를 지원한다는 면에서 성격이 일치한다. 그런데 『일본서기』에 보이는 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임나를 경영하는 주체로 되어 있는 왜로 사실은 『일본서기』 편찬 과정에서 백제에 의한 것이 왜에 의한 것처럼 되어버린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열도에서 온 왜로 일관되게 백제를 지원하고 있다. 백제를 지원하는 일본열도에서 온 왜의 활동은 5세기에는 신뢰할만한 기사가 거의 보이지 않고 6세기에야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어느 경우나 백제와의 관계는 우호관계로 일관하고 있고 신라와는 적대관계로 일관되어 있다. 따라서 5세기 한반도 남부에 활약한 것으로 되어 있는 왜에 관한 기본 사료라고 할 수 있는 「광개토왕릉비문」을 비롯하여 『삼국사기』․『일본서기』․『송서』등에 보이는 왜는 백제를 지원하고 있다는 면에서 상호 모순 없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