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百濟三書의 하나인 『百濟記』는 百濟王氏인 善光과 망명백제인이 7세기 후반 일본에서 近肖古王~文周王대까지 百濟의 역사를 정리한 사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善光 등은 당시 일본의 고대 율령제 국가에서 정치사회적 지위를 보전하는 방법으로써 백제가 근초고왕 이래 天皇家에 봉사하였다는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를 위해 百濟의 왕위계승을 천황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기술하는 등 百濟계 원사료를 변형시키거나 윤색하여 『百濟記』를 편찬하였다.
『百濟記』 편찬에 기초가 된 것은 百濟 王曆 기사이다. 『日本書紀』 편찬자는 『百濟記』를 이용하여 神功紀應神紀 기사를 만들고 나서 다시 중국 사서를 참고로 수정하였다. 그 결과 백제의 왕력도 120년 거슬러 올라가 놓이게 되었다. 『日本書紀』 편찬자는 『百濟記』와 중국측 문헌을 이용하여 神功紀를 일본의 대외관계 기사의 출발점이며, 그 출발이 韓半島諸國의 군사적 복속 및 국교의 개시로부터 시작되도록 구성하였다.
『百濟記』 기사 가운데는 武內宿 후예씨족들의 전승과 함께 『日本書紀』 기사 구성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즉 『百濟記』는 전설상의 시대인 神功應神시대와 그 시대의 활약상을 전승으로 가지고 있는 武內宿 후예 씨족 전승에 사실성을 부여해 주기 위해 이용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百濟記』는 『日本書紀』에서 大和政權이 신라를 정토하고, 이어 백제를 복속시킴으로써 任那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일련의 대외 관계 구도를 완성시키는 데도 이용되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