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백제의 신라 공격 준비
Ⅲ. 백제의 관산성 공격과 패전
Ⅳ. 관산성 전투의 영향
Ⅴ. 맺음말
요약
554년 백제와 신라 사이에 벌어진 관산성 전투의 배경과 전개 과정, 그리고 그 영향을 관련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였다.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게 된 단초의 일을 553년 신라에 의한 한강유역 탈취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제 성왕은 신라에 대한 유화책과 동시에 강경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았다. 즉 성왕은 신라가 한강하류유역을 점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왕녀를 신라에 시집보내는 유화책을 구사하면서도 아울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당시 백제에 부용관계에 있었던 가야는 물론 왜에 5차례나 군사 원조를 요청한 사실을 밝혀냈다. 성왕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비협조로 인해 신라와의 동맹관계를 회복하려는 의도의 혼인 정책은 일단 실패한 것으로 보았다.
한편 백제 조정 내에서는 신라에 대한 전면 공격을 놓고 지배세력 간에 큰 갈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성왕의 아들 여창이 주장하는 강경론자들은 ‘耆老’로 표현된 세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라 정벌을 결정하였다. 戰況의 전개 과정은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제1단계는 백제의 선공으로 전쟁이 시작되어 백제연합군의 초반 우세속에 관산성 일대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진 시기, 제2단계는 성왕의 참전과 신라의 총력전에 의한 반격이 이루어진 시기, 제3단계는 성왕의 죽음을 계기로 신라의 대반격이 가해짐으로써 백제 연합군이 패퇴한 시기로 각각 구분하였다.
백제의 관산성 전투 패배는 대외적으로 볼 때 이후 삼국 항쟁사에서 여러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 전쟁은 백제와 신라간의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라 두나라가 국운을 건 일대 대회전이라는 점, 기존의 제라동맹체제가 와해되고 두나라가 백제 멸망기까지 적대관계로 돌변하게 되었다는 점, 신라가 한강하류유역을 확보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가야제국의 멸망을 촉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삼국의 역관계상 큰 변화를 찾을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위덕왕 즉위초에 일어난 혼란을 극복하고 이후 사비시대 백제사 전개에서 나타난 왕권과 대성귀족들 간의 길항관계를 제도적 틀 속에서 유지하는 대성8족을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었음을 밝혔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