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554년 무렵 신라의 서북지역 방어체계
Ⅲ. 백제의 관산성 공격과 신라의 대응
Ⅳ. 관산성전투의 역사적 영향
Ⅴ. 맺음말
요약
본 논고는 관산성전투의 전개과정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규명한 것이다. 신라는 6세기 중반에 이전에 소백산맥 서쪽 지역에 쌓은 산성을 중심으로 서북지역 방어체계를 구축하였는데, 그것의 중심은 삼년산성(보은군 보은읍)에서 사벌지역(상주시)에 이르는 루트와 관산성(옥천군 옥천읍)에서 감문지역(김천시 개령면)에 이르는 루트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었다. 553년에 신라가 고구려의 지원을 받아 한강 하류지역을 차지하자, 백제 성왕이 554년 12월에 가야, 왜와 연합하여 관산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처음에 新羅의 大幢軍主와 沙伐軍主가 大幢軍團, 沙伐停軍團, 몇몇 外餘甲幢을 이끌고 반격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였다. 이후 신라는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징발하여 州를 단위로 行軍軍團을 편성하고, 관산성을 사방에서 포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였다. 이러는 와중에 백제 성왕이 부여에서 狗川에 이르자, 三年山郡 高干 都刀의 노비 苦都가 聖王을 사로잡아 죽였다. 성왕의 逝去 소식을 들은 백제군의 사기가 떨어진 틈을 타서 신라군이 관산성을 일거에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관산성전투 이후 백제는 성왕의 복수를 갚기 위하여, 6세기 후반부터 고구려는 한강유역을 되찾기 위하여 신라를 자주 침략하였다.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과 관산성전투를 계기로 격화된 삼국 사이의 항쟁은 642년 대야성전투 이후 삼국뿐만 아니라 당과 왜 등이 참여하는 국제전으로 비화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