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비 팔수부인은 전지왕의 왕비다. 아신왕의 며느리이고 구이신왕의 어머니이도 하다. 팔수부인의 출자는 진씨, 왜계라는 설이 있지만 해씨일 가능성이 높다. 진씨설은 아신왕대 이후 정국상황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왜계설은 왜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기사인 전지와 팔수의 혼인 이야기를 《일본서기》에 싣지 않은 점을 설명하기 어렵다. 해씨설은 전지왕의 즉위배경과 해씨세력의 대두와 득세를 잘 설명해 준다.
팔수는 아신왕대 해씨 가문에서 태어나 태자 전지와 혼인하였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고 수세의 입장에 있었다. 이에 군사를 청하기 위해 전지부부를 왜에 질로 보냈다. 한편 진씨에게는 전지와 장차 왕비가 될 해씨 출신의 팔수를 견제하기 위한 속셈도 있었다. 팔수는 왜에 9년 동안(397~405) 머물렀다. 이곳에서 왜의 여러 사람과 접촉하였다.
아신왕이 죽자 팔수는 전지와 함께 만삭의 몸으로 백제로 갔다. 100명의 병사가 호위했다. 전지의 동생 설례가 이미 왕이 되어 전지를 거부했다. 해충과 국인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다. 팔수는 이와중에 아들 구이신을 낳았다. 전지왕은 공을 세운 해충을 달솔에 임명하고 팔수왕비의 친척인 해수와 해구를 각각 내법좌평과 병관좌평에 임명하였다.
전지왕이 죽자 구이신이 왕위에 올랐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목만치가 국정을 농단하고 팔수부인과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했지만, 실은 팔수부인이 섭정을 하여 목만치 등 새로운 세력을 등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팔수부인은 백제의 아신왕-전지왕-구이신왕 등 3대 30여 년간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바다를 넘나들었던 세계인이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