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 量制는 그간 사료의 영성함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백제 木簡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백제 양제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支藥兒食米記」 목간은 일별 식미 분급량을 정리한 것인데, 여기에 大升·小升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백제가 사비시기에 양제를 개혁하여 대용량 양제로 전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용량 양제와 관련해서는 「佐官資食記」 목간에서 보다 구체적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좌관대식기」에서는 升 단위를 숫자로 표시하지 않고 半·甲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半은 5升(1/2斗)을, 甲은 2.5升(1 /4斗)을 뜻하는 용어였다. 이는 기존 단위 2.5升을 기준단위로 하는 새로운 단위량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사비기 백제에서 기존양제를 2.5배 늘린 양제가 시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제의 변화는 백제 사회 내부의 절실한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제도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양제 변화가 수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좌관대식기」에서 升 단위는 대용량으로 변화했으나, 斗 단위는 여전히 기존의 소용량 단위가 그대로 사용된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좌관대식기」를 통해 백제에서 ‘貨食’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賑恤制度가 시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농경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시행되었던 救荒 정책의 일종으로 백제에서는 정연화된 제도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