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武王의 出系에 대한 새로운 理解
3. 武王의 卽位와 支持勢力
4. 맺음말
요약
본 연구에서는 무왕의 출계문제와 왕위계승 상에 있어서의 문제를 새롭게 조망해 보고자 하였다. 그 동안 무왕의 출계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왕흥사지 사리함의 명문과 무왕과 왕흥사의 관계 등을 검토한 결과 무왕은 ‘亡王子’의 적장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왕이 왕경에서 거주하지 못하고 익산지역에서 생활하게 된 배경은 위덕왕 24년 위덕왕의 적장자로서 무왕의 아버지였던 왕자가 사망함에 따라 정치권력이 혜에게로 이동하였고, 차기 유력한 왕위계승권자였던 무왕은 혜에 의해 익산지역으로 추방되었거나 또는 구명을 위해 도피생활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익산지역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무왕은 익산세력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혜왕이 즉위 이후 바로 사망함에 따라 그의 장자인 법왕이 즉위하였으나 그는 성왕의 직계가 아니었으므로 위덕왕 직계의 왕족과 대신라 강경세력을 중심으로 법왕을 제거하고 무왕을 왕위에 옹립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무왕을 지지한 세력으로는 위덕왕의 직계왕족, 妃의 출신기반인 익산세력, 익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불교세력, 그리고 大姓貴族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왕족으로는 위덕왕 직계인 아좌를 비롯해 복신 등이 주목된다. 무왕 妃의 재지기반이었던 익산지역의 재지세력과 불교세력 역시 그의 즉위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였던 세력이었다. 그리고 대성귀족으로는 성왕대 대신라 강경성향을 가졌던 세력이 무왕의 지지세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들 세력으로는 해씨를 비롯해 연씨 등이 주목되며, 이 외에도 다양한 세력의 지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사씨는 사씨왕비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무왕 즉위시 지지세력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은 낮으며, 무왕 말기에 와서 다시 요직에 진출하고, 그 과정에서 왕비를 배출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결국 무왕이 왕위를 승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亡王子’의 적자로서 위덕왕 직계를 중심으로 한 왕족의 세력결집, 익산지역을 재지기반으로 하였던 妃의 세력, 일부 대성귀족과 불교계 세력 등의 광범위한 지지를 통해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그는 성왕-위덕왕-‘亡王子’-무왕이라고 하는 성왕 직계로서 왕위계승의 명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울러 위덕왕 직계왕족을 비롯한 귀족들로부터 지지를 받음으로써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하겠다. 그 결과 무왕은 즉위 직후부터 강력한 대신라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으며, 그 실현을 위해 익산경영을 적극적으로 실행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