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의 제기
Ⅱ. 무왕대 대신라전의 전개양상
Ⅲ. 익산세력의 대신라 공존 추구
1. 선화공주 설화에 대한 접근 방향
2. 선화공주 설화의 원초적 모습
Ⅳ. 사씨세력의 대신라 전쟁 추진
Ⅴ. 나머지 말
- 선화공주 설화의 변화와 관련하여
요약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한 이후 사비시대 백제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앞으로 신라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었다. 이에 백제의 지배세력은 신라에 대한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누어져 심각한 갈등을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신라와 전쟁을 벌여서 잃어버린 영토를 다시 확보하고자 하는 세력이 당시의 정국을 주도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신라전은 백제의 의도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그 결과 대신라전의 성공적인 수행이라는 과제는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대에 넘어가게 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백제 무왕은 대신라전을 치열하게 전개한 국왕이었다. 즉위 직후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백제가 벌인 대신라전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위덕왕대와 마찬가지로 당시 무왕대에 들어와서도 신라와의 관계에 있어서 전쟁보다도 공존을 추구한 정치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선화공주 설화는 그러한 상황을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발견된 익산 미륵사의 서탑에서 나온 사리 봉안기가 보여주고 있듯이 사씨 출신의 왕비와 관련된 정치세력이 대신라전을 주도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이 백제 무왕대에 신라와의 우호를 추구하였던 세력과, 그 보다는 대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세력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서 신라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대신라전이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