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義慈王의 卽位
Ⅲ. 義慈王 初期 政變에 대한 理解
Ⅳ. 義慈王 前期의 勢力 基盤을 통해 본 政局運營의 特徵
Ⅴ. 맺음말
요약
의자왕대의 정치는 의자왕 15년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되는데, 특히 후기는 백제의 멸망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인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시기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타당하다. 다만 그러한 정치적 혼란이 야기된 원인에 대한 탐구는 아직 미흡한 편이다. 의자왕대 후기에 발생한 정치적 혼란의 주요 원인은 이 무렵 의자왕의 외교 정책이 고구려와 동맹을 맺는 쪽으로 변화하면서 의자왕과 그의 치세 전기의 세력 기반이었던 성충 세력과 갈등을 빚은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외교노선을 둘러싼 갈등은 다시 권력 다툼으로 증폭되었다. 즉 의자왕 치세 전기에 왕자 융의 태자 책봉과 정치 운영 주도에 불만을 가졌던 군대부인 은고와 그 아들 효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들이 의자왕의 제려동맹을 지지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하고, 성충 세력을 축출하고 융을 견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소외되었던 왕서자들을 대거 좌평에 임명하였으며, 달솔층의 정치적 성장을 지원하여 그들을 우익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정계개편은 태자 교체의 문제와 맞물리면서 백제 지배층 내부의 격심한 대립과 분열을 야기하게 되었다. 일단 권력을 장악한 은고 세력은 효를 소왕의 지위로 격상시켜 실권을 잡게 하였고, 더 나아가 융을 몰아내고 효를 차기 왕위 계승권자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왕족 내부나 귀족층들로부더 반발이 일어나게 되었고, 의자왕 19년 이후에는 양 세력의 대립과 분열이 극에 달하였다. 이를 눈치챈 신라는 당에 이러한 사실을 전하면서 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을 이끌어 내었다. 이 때 분열되어 있던 백제 지배층은 나당연합군의 공격 앞에서도 하나로 힘을 합하지 못하고 권력 투쟁을 벌였다. 이처럼 분열된 백제 지배층은 군사력을 총동원한 방어전을 펴지 못하고, 무왕대의 왕족 세력을 포함한 지방 세력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의자왕과 그 왕자들은 나당연합군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