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소연맹국 시기의 정국운영
Ⅲ. 좌평과 연맹왕국의 정치구조
1. 좌평의 설치와 그 성격
2. 연맹왕국의 정국운영 방식
Ⅳ. 맺음말
요약
백제사의 전개과정에서 3세기 후반 고이왕대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특히 정치사적인 측면에 서는 佐乎制와 官等制의 정비가 이루어진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백제 정치기구의 골격이 이 무렵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고이왕대에만 주된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그 이전 시기의 정치구조와 고이왕대의 정치구조가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미진한 편이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우선 고이왕대 이전의 정치구조에 대해 左·右輔制를 중심으로 검토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초고왕대 후반부터 주변 소국의 자치력이 통제당하여 小聯盟國체제가 확립되었으며, 소연맹국 단계에서의 원활한 정국운영을 위해 고이왕대 초반에 우보가 설치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당시 우보의 역할은 소연맹국에 참여한 수장층들의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의 실행에 있어 필요한 실무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한편 좌평에 대해서는 그간 관료 내지 중앙정치기구적 성격을 부각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본고에서는 이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 초점을 두어 좌평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했다. 고이왕대의 백제가 연맹왕국을 형성하긴 했지만, 당시 복속된 소국들은 아직 일정 정도 자치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면 좌평의 성격에 대해서도 재지 수장층들이 그들의 세력기반을 유지한 채 국정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수여받은 칭호로 보는 것이 가능하게 돤다. 즉 좌평이 처음 설치될 당시에는 국왕 휘하의 일원적 관등제에 포함된 존재가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당시 국왕 중심의 일원적 관료제를 목표로 정비된 것은 率系 이하의 관등이었다. 따라서 연맹왕국시기 백제의 정치는 국왕과 좌평을 칭한 세력들이 南堂에 모여 주요 국사를 의논하고, 그 실무적 처리는 솔계 이하 관등 소지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고이왕대의 정치기구 정비는 좌평 및 솔계 이하 관등의 설치, 그리고 남당회의의 탄생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모두 국가 규모의 확대에 따른 조치로 설명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보통 기존의 좌·우보제를 확대·개편하여 좌평제가 성립했다고 말하지만, 본고에서의 검토 결과에 따르는 한 우보가 지녔던 행정 관료적 성격은 솔계 이하 관등 소지자에게 넘어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이렇게 보면 소연맹국 시기 후반과 연맹왕국 시기의 정국운영 방식은 규모의 차이를 제외하면, 본질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백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연맹왕국에 가담한 주요 세력의 수장층들이 모두 정국운영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5부 혹은 5부의 지배층들만이 정국운영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고구려·신라의 정치구조와는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