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간무천황의 혈연적 계보
-구 백제계 씨족의 후견으로서의 백제왕씨-
III. 간무천황과 백제왕씨
IV. 맺음말
요약
백제왕씨가 7세기 말에 고대일본의 율령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은 이래 8세기의 나라(奈良)시대를 거쳐 백제왕씨는 율령국가의 관인으로서 우대되어 왔다. 이와 아울러 일본율령국가의 또 다른 특징인 씨성(우지․가바네) 체제와는 별개의 존재인 것도 지적되어 왔다.
백제왕씨의 우대의 배경에는 고대일본의 율령국가의 운영에서 필요한 실무 관료로서의 성격, 군사 씨족적 성격으로서의 첨단기술을 가진 집단이라는 점 등 백제왕씨 자체가 갖고 있던 장점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일본 율령국가의 유지라는 목적에서, 백제왕씨가 의사(擬似) 번국으로서 상징적이고 실태적인 존재로 기능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백제왕씨의 대우는 헤이안(平安) 초기에 정점을 맞이한다. 간무천황의 치세 하에서 백제왕씨는 일찍이 없었던 대우를 받는데, 그 이유로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백제왕씨와 간무천황의 사이에 가까운 혈연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간무천황의 외조부모는 백제 계통의 도래씨족이었다. 조부는 야마토씨이지만 뒤에 다카노씨로 개성하고, 조모는 오에씨이지만 원래는 하지씨라는 도래계 씨족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간무천황의 생모인 다카노 니아가사의 혈통은 완전한 도래계 혈통이었다. 그런데 백제 계통의 다카노씨의 후견은 백제왕씨였다. 그 결과, 간무천황은 백제왕씨를 외척으로 여긴 것이다.
한편, 나라시대로부터의 백제왕씨가 가진 씨족적 특징으로서 군사 씨족적인 성격은 여전히 유지한 채로 복수의 후궁 관인을 배출하는 등 천황의 후궁 관인으로서의 권력이 간무기에는 추가되었다. 한편으로 대외적 관점에서 볼 때 백제왕씨는 간무천황의 ‘신왕조 의식’, 즉 사이메이․덴치조의 계승 의식을 나타냈다. 간무천황 시기는 신왕조 의식의 발상과 함께 중국적인 사상에의 본격적인 도입기였다. 백제왕씨는 이러한 의식에 적합한 씨족으로서 여겨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백제왕씨가 우대될 수 있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