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초기에 낙랑, 말갈로 대표되던 동북지역 적대세력에 대해 마한과의 유대를 견지하면서 이들 세력에 대응하였다. 그러나 낙랑, 말갈과의 전투 수행과정에서 축적된 군사력의 성장과 대내적인 통치기술상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마한과의 복속관계에서 벗어나 그 세력을 병합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역관계 속에서 대두된 동북지역에 대한 방어의 필요성과 새로이 편입된 지역에 대한 통제 등 지방통치체제의 마련을 위하여 성립된 것이 바로 초보적 지방통치제로서의 성격을 지닌 부체제였다.
부는 실제 운영과정에서도 군사력 동원 및 순무, 역역의 행정단위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가 군사적 기능뿐 아니라 행정단위로서도 기능하였으며 이러한 행정단위로서의 역할이 점차 강화되어감을 파악해볼 수 있다, 또한 부명을 인명 앞에 칭하며 등장하던 인물들에 주목하여 지방세력들의 존재양상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들은 백제 국가권력에 의하여 좌우보 등의 공적 지배질서체제 내로 흡수되고 있었다. 그러나 부명을 인명 앞에 칭하던 유력세력들은 말갈의 군사행동에 공동대처하거나 세력동원의 주체가 되는 등 그들 관할 하에 있던 각 지역에서 어느 정도 독자적 기반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왕권으로 표상되던 백제 국가권력은 부체제의 성립을 통해 독자적 세력기반을 지닌 지방세력의 인용 및 공적 지배질서체제 내로의 편입을 도모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국가지배력의 확산에 주의를 기울였음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권력의 지방에로의 침투가 시화되고 남한강 및 낙동강 유역으로의 진출을 통해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효율적인 지방통제방식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부체제에 보완책으로 담로체제가 실시되었으나 고구려에 의한 한성함락으로 웅진시대로 전이되었다.
사비시대에 완비된 왕도 지배체제인 5부와 지방통치체제인 5방제도에 앞서 이루어진 백제 초기 지방통치체제에 대한 고찰 과정에서 부, 담로, 방체제로의 발전이라는 이해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백제 초기의 부는 후대의 부와는 다른 성격으로서, 이후 지방통치체제의 초보적 단계로서 그 시발적 형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