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도일 한인
3. 5세기 초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의해 도일한 한인들에 대한 정책
4. 6세기 말 백제멸망에 따른 도일 한인들에 대한 정책
5. 도일 한인들에 대한 672년 임신란 이후의 정책
6. 맺음말
요약
고대 일본의 도일 한인들에 대한 정책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5세기 초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따른 도일 한인들에 대한 정책이다. 그들은 전란을 피해서 도일한 사람들로 수적으로 가장 많았다. 그들은 집단으로 촌락을 이루면서 집거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진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品部나 伴造로서 중간 호족층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고대국가로 발전하고 있던 야마토 정권은 그들을 체제의 바탕으로 삼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는 663년 백제의 멸망에 따라 도일한 한인들에 대한 정책이다. 그들은 백제부흥운동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온 일본군을 따라서 도일한 세력들로 백제의 지배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663년 백제를 지원하기 위해서 지원군을 파견했던 天智政權은 672년 壬申亂으로 무너진다. 따라서 壬申亂을 앞두고 있던 天智政權은 백촌강에서 함께 싸운 망명 백제인들을 체제의 근간으로 삼을 수밖에는 없었다. 667년 近江 천도를 전후해서 망명 백제인들을 近江지역으로 이주시키고 그들을 중용한 것은 여기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망명 백제인들은 처음부터 天智政權과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던 세력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672년 壬申亂 이후의 한인에 대한 정책은 새로이 이주하는 한인들에 대한 정책이 아니라 이미 일본열도에 정주하고 있던 한인들에 대한 정책의 변화라는 면에서 이전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壬申亂에 의해서 등장한 天武政權은 天智政權을 타도하고 들어선 정권인 만큼 망명 백제인들을 체제의 근간으로 삼았던 天智政權의 한인에 대한 정책과는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는 없었다. 따라서 한인들을 변방 東國에 이주시키거나 배치시킴으로서 체제에서 완전히 탈락시켰다고 할 수 있다.
고대 도일 한인들에 대한 일본의 정책은 문화적 수준의 차이나 일본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 결정되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5세기 초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의해 도일한 한인들은 선진 기술의 소유자들이었으므로 고대국가로 발전하고 있던 일본은 그들을 체제의 바탕으로 삼았다. 그리고 6세기말 백제멸망에 따라 도일한 망명 백제인들은 백촌강싸움에서 함께 싸운 운명공동체였으므로 壬申亂을 앞 둔 天智政權은 그들을 체제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러나 天智政權을 타도하고 등장한 天武政權은 황친정치를 이루기 위해서 한인들을 변방 동국에 이주시킴으로써 정치적으로 완전히 배제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