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성왕대 이루어진 전왕권의 기반이 관산성 패전 이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고자 하는 것으로 위덕왕의 즉위사정과 이에 따른 정치세력의 동향을 살펴 위덕왕 집권초기 왕권의 존재형태를 분석, 검토하고 위덕왕대 왕권의 성격문제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위덕왕 집권초기 정국운영은 관산성 패전으로 왕권이 동요되고 주화파인 기로 세력들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기로세력 역시 주전파와 함께 그 세력기반에 많은 타격을 입었으므로 그들 세력이 정국운영을 독주하는 데에는 일정 제약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위덕왕은 기로세력들을 적절히 무마해 나가면서 전쟁 등을 통한 방법으로 꾸준히 왕 자신의 지배력과 권위를 공고히 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위덕왕 14년 이후 그의 집권 2기에는 거의 전쟁이 없었고 대내적인 체제정비에 전념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과 함께 국왕의 권력기반인 22부사의 강화, 불교이념을 통한 배타적 왕족의식의 고양, 백제본기와 같은 역사편찬으로 왕실의 권위를 정당화하려는 이념의 수립, 특히 중국과의 활발한 대외관계를 통한 왕권의 권위확보 등의 대내외적인 여러 시책을 통해 왕권기반 구축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위덕왕 사후 왕위계승과정에서 다소 왕권이 불안한 일면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국왕중심의 정치운영을 지향하게 되어 이후 무왕대 왕권기반에 바탕을 이루게 한 고리로서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