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동방정책과 관련한 웅진도독부의 역할은 시기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663년 11월 이전에는 백제 부흥군 토벌을 위해, 그리고 668년까지는 백제 유민들을 안무하여 그들의 힘을 고구려 정벌전으로 결집하기 위해 웅진도독부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비해 668년 이후에는 오히려 당의 우방국이었던 신라 침략을 위해 웅진도독부가 필요했다. 나아가 웅진도독부는 고구려ㆍ신라 정벌을 위한 당의 對倭 창구 역할도 담당했다.
백제 유민들과 웅진도독부의 관계는 백제 부흥운동 지도자들의 망명지선택을 기준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당에 망명한 이들과 당의 포로 신분에서 웅진도독부 관리로 부임한 이들은 웅진도독부를 통해 백제 재건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 하였다. 백제 지역에 남은 이들도 그들의 생활 터전을 확보해 준 도독부를 당의 장수들이 운영하던 이전 체제와는 다르게 인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와 왜로 망명한 이들은 웅진도독부를 당의 지배기구로 인식하여 그 지배를 거부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