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유민들의 입당시기와 규모
III. 유민들의 이주지역
IV. 유민들의 활동상
V. 맺음말
요약
백제 유민들이 당으로 들어간 시기는 660년 백제 멸망 직후와 664년 3월 백제부흥운동의 실패 후 그리고 668년 고구려 멸망 후, 675년 이후 백제 고토에 설치한 웅진도독부가 유명무실화되어 사실상 철폐되는 시기 등 4차례였다. 660년과 664년에는 대개 전쟁포로로 끌려가거나 당군에 협조해 백제 멸망과 부흥군 진압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 당군을 따라 들어갔고, 668년에는 고구려로 망명했던 백제 유민들이 고구려 멸망으로 당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고, 675년에는 웅진도독부에서 활동하던 백제 유민들이 자발적으로 당에 들어갔다.
당에 들어간 백제 유민들의 규모는 660년에는 의자왕과 태자 및 왕자 등 왕족과 신료, 백성 등 12,000~13,000명 정도였다. 664년과 668년, 675년에는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이 없어 알기 어렵다. 다만 675년에는 664년 보다 많은 수의 백제 유민들이 당에 들어갔을 것이다. 왕족과 고급 귀족들은 낙양과 장안 등지로 이주되었고, 중하위 귀족과 일반 백성들은 연주와 서주 등지로 이주되었다. 676년 요동의 건안 고성에 웅진도독부가 다시 설치되자 연주와 서주 등에 있던 백제 유민들은 건안 고성으로 옮겨졌다.
의자왕은 당에 도착하자마자 세상을 떠났으나 부여융과 그 직계 왕족들은 웅진도독부와 당으로 들어온 백제 유민들을 안무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일부는 무장으로 돌궐, 토번 등과의 전쟁에 참전하여 이름을 날렸다. 또한 당 황실의 종친이나 유력 가문과의 혼인을 통하여 입지를 다지기도 하였다.
흑치상지, 예식진과 같이 백제 멸망과 부흥군 진압시 당의 편에 섰던 가문의 후예들은 대개 낙양과 장안 등지에 자리를 잡고 웅진도독부의 관리 되어 백제 유민 按撫에 동원되기도 하였고, 백제에서 무장으로 활약한 경험을 살려 돌궐, 토번 등과의 전쟁에서 무장으로 활약했다. 이밖에 사타충의와 같은 인물은 무장으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당 황실 내부의 政爭에도 깊숙이 개입하였고, 난원경은 중서성에서 황제의 근신으로 활약했다. 당으로 이주한 백제 유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백성들은 호적에 편제되어 점차 동화되어갔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