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천안지역의 마한․백제문화
Ⅲ. 백제의 간접지배와 천안 용원리 세력의 부상
Ⅳ. 백제의 직접지배
Ⅴ. 맺음말
요약
3-4세기대 천안지역에는 천안 두정동․장산리․용원리B․C등 주거지와 천안 청당동․운전리․신풍리 등의 토광묘와 주구토광묘에서 확인되듯이 다양한 재지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 세력은 마한의 전통이 강한 주거형태인 4주식 주거지와 토광묘, 분구묘를 조성하고 있었다. 이중 천안 청당동 유적은 곡교천을 통한 해안루트, 천안-청주-상주의 육상루트와 중국과 진변한간의 교류를 통해 마한의 맹주국(목지국)으로 성장하여 다른 지역의 세력보다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5세기에 들어서면서 목천분지의 천안 용원리 세력은 다른 세력들을 압도하게 되었다. 백제는 목지국을 병합하여 곡교천 유역의 교역권을 장악하고 곡교천 유역의 목지국 동조 세력들을 통제하였다. 반면에 백제는 고구려에 의해 황해도 철산지를 잃고 충북의 충주와 진천 등지로 진출하였지만, 다시 고구려의 남한강 유역 장악으로 인해 충북지역의 충주 일대를 위협받게 되었다. 백제는 인근에 있던 목천지역의 철생산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백제는 목천지역 철생산지에 위치하고 있던 천안 용원리 세력에게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그리고 금동용봉문환두대도 등 위세품을 하사하여 지배하고자 하였다. 천안 용원리 세력은 백제로부터 위세품을 하사받아 천안지역의 맹주로 인정받고, 철 등 공납의 의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475년 백제의 한성함락으로 인해 천안지역은 백제와 고구려의 국경지역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백제는 천안시내권에 소규모산성을 축조하여 옛 목지국 세력들의 이탈을 방지하고자 하였고, 천안 용원리 세력이 있던 목천분지 일대에 중규모 산성을 쌓아 고구려와 신라의 침공을 방어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천안 용원리 세력들은 백제 중앙묘제인 횡혈식석실분을 수용할 만큼 민첩하게 백제의 국경방어에 협력하여 중앙귀족화하였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