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선왕의 장례 주재와 왕위 계승
1. 무령왕의 장례의식
2. 장례의식의 주재와 왕권
III. 왕권의 확립과 대통사의 창건
1. 왕권 강화를 위한 시책
2. 왕권 안정의 구심점. 대통사 창건
IV. 맺음말
요약
무령왕이 523년 세상을 뜨자 성왕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성왕은 선왕을 대신하여 ‘다시금 강국이 된 백제’의 명운을 짊어지게 되었다. 먼저 선왕의 장례를 주재하면서 그 기간 동안 왕권의 기틀을 잡고, 사비천도 후 대외전쟁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성왕은 왕권을 뒷받침 해 줄 통치이념이 필요하였다.
무령왕대는 양과의 교섭을 통해 중국의 장례문화가 들어왔는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을 통해 빈의 기간을 알 수 있었다. 이 기간은 선왕의 장례 기간이자 성왕이 왕권을 구축해야 하는 시기였다. 성왕은 중국의 상장례 의식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오경박사를 통해 부왕과 어머니의 장례를 잘 마무리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성왕은 고구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부왕의 시호를 추증하여 왕족 의식을 고양하였으며, 양으로부터 ‘지절도독백제제군사수동장군백제왕’의 작호를 받았다. 이로써 성왕은 선왕의 장례를 성공리에 마치고 선왕의 왕권을 온전히 물려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성왕은 측근 등 새로운 정치세력을 이용하여 지배체제를 재편하고, 대외전쟁을 수행하여 그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 이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성왕은 불교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갈등을 치유하는 한편 왕권강화를 모색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대통사의 창건으로 이어졌다.
대통사의 창건 목적은 양면적이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양무제를 위해 창건하였다고 하면서 외교적인 실리를 추구하였지만, 실제로는 불교를 통해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무령왕 부부의 영령을 추복하는 능사적인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왕권 안정의 구심점으로 삼으려 한 것 같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