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禰軍 묘지의 석문
Ⅲ. 묘지의 내용과 구성
Ⅳ. 禰軍 묘지에 보이는 사자로서의 사적
Ⅴ. 맺음말
요약
2011년에 王連龍이 소개한 禰軍墓誌에 따르면, 禰軍은 백제 멸망 때에 唐에 투항한 백제 고관이고, 묘지에는 그의 일족의 유래나 백제에서의 역대 활약, 唐에서의 신하로서의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묘지의 출토 경위나 소재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고, 묘지 자체의 실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최신의 정보에 따르면, 묘지의 소재가 확인되었지만 현재까지 미공개이다. 그래서 이 글은 王連龍이 논문 속에 소개한 지석 및 탁본사진에 기초하여, 묘지에 기록된 전문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역주를 전제로, 禰軍의 외교활동을 중심으로 묘지에 기록된 사적을 고증하였다.
禰軍墓誌는 고전적을 구사하여 작성된 난삽한 문장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禰軍墓誌에 관한 연구는 자의적으로 묘지의 일부를 추려내어 논의하는 경향이 있어서, 禰軍의 사적이나 시대배경은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묘지 전문의 이해를 전제로 하면,『日本書紀』·『三國史記』등의 편찬사료에서 알려져 있었던 禰軍의 倭나 신라에의 외교활동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禰軍의 활동시기에 唐人의 동아시아 정세 인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동시대자료임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묘지에 기록된 ‘日本’이어서, 지금까지 일본 국호의 최초 사례로서 주목을 모아 왔다. 그러나 ‘日本’은 禰軍墓誌속에서 ‘扶桑’・‘風谷’・‘盤桃’ 등 동방을 의미하는 어구와 함께 사용되고 있어, 그 문맥상 ‘日本’이 백제를 지칭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일본은 동방을 지칭하는 어구와 함께 사용되고 있는 것이고, 묘지에는 동시대에 사용된 국호는 하나도 사용되고 있지 않는 것에서 묘지가 제작된 678년에 ‘日本’이 국호로서 성립되지 않았음이 판명되었다. 종래, 일본 국호의 유래를 아마테라스라는 태양신을 조상신으로 제사하는 천황가와 밀접하게 관계된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였지만, 일본 국호는 그러한 고대 일본신화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고, 중국의 동방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7세기 말에 국호로 전화하였음이 밝혀졌다.
묘지 속에 기록된 禰軍의 활동시기에 唐人의 동아시아 인식으로서 중요한 것은 묘지 속에 ‘백제의 잔당은 倭에 의거하여 주벌을 피하고 있었지만, 고구려의 잔당은 신라를 거점으로 하여 막는 모습이 견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고, 이것은『日本書紀』나『三國史記』등이 전하는 백제・고구려 멸망 후 각각의 왕족이 倭國이나 신라의 왕권에 의해 책봉된 사실과 부합하고 있어서, 말하자면 제3자인 唐側의 동시대인식이 묘지에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서 주목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