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박사의 설치와 그 성격
III. 박사제도의 정비와 기능 확대
IV. 맺음말
요약
백제에서 박사가 처음 설치된 시기는 高興의 『書記』편찬이나 王仁의 사례에서 보듯이 近肖古王代로 추정된다. 근초고왕은 유학에 정통한 漢郡縣系 인재들을 등용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치하였으며, 이는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상징적 조치로 이해된다. 근초고왕대의 박사는 태학을 통해 한학과 유학을 교육시키는 학관으로서의 성격보다는 주로 한학과 유학에 능통한 한군현계 지식인들을 등용하기 위한 특수한 성격의 관직으로 이해된다. 그 역할은 공적인 문서 기록을 관장하거나 또는 역사 편찬, 유학 장려 정책과 국왕에 대한 정책 자문 등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는 6세기 초 무령왕대에 들어와서 근초고왕대에 설치한 博士官을 정비하여 五經博士制를 제도적으로 채용하였다. 國學을 설치하여 오경박사제를 운영하였으며, 여기에 유학에 정통한 한군현계 인재들을 오경박사에 임명하여 교육의 질과 내실을 기하려 하였다. 이는 유학 중흥책을 도모한 梁 武帝의 개혁정치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동안 쇠미해진 왕권을 회복시켜 중앙집권화 시책을 추진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백제는 오경박사제를 대외관계에 적극 활용하여 신라와 왜에 선진 문물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를 통해 백제와 신라 및 왜 사이에 상시적인 군사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이 제도는 聖王과 威德王代를 거치면서 그 기능이 오경박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문기술 분야에까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백제 성왕이 예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梁에 講禮博士 파견을 요청한 것은 당시 성왕이 추진하고 있던 관제 정비를 통한 중앙집권체제 확립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오경박사는 여전히 파견되고 있지만 단장 - (오경)박사 - 전문기술자 - 승려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6세기에 들어와 박사의 직능이 세분화되어 갔을 뿐 아니라 관등을 소지함으로써 이제는 국가 행정체계 내에 편입되어있었다.
6세기 이후 백제의 의학과 불교건축 부문에 있어서는 분업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백제는 상급장인들에게 博士의 관직을 수여해서 업종별로 전문화를 제고시키려고 하였다. 박사 밑에는 업종별로 우수한 장인들을 선발하여 배속시키고 이들이 예하의 하급 장인들을 기술적으로 지도.통제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