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익산 지역의 왕궁 시설과 출토 와당
Ⅲ. 사비 도성의 왕궁구역과 사원
Ⅳ. 맺음말
요약
본고는 백제 사비시기를 중심으로 하여 왕궁과 주요 사원들이 어떠한 관계를 가지면서 배치되었는가에 주목하여 도성 내 사원들이 정치 공간과 종교 공간을 계획적으로 일체화시킨 왕권의 통합의례의 장으로 기능하였음을 제시하였다.
Ⅱ장에서는 익산 지역의 왕궁과 사원을 분석하였다. 익산 왕궁리유적은 이궁이나 행궁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백제 왕궁의 형태를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이 유적에 관한 분석을 통해 백제 왕궁의 구성 요소와 배치 양상을 분석하였다. 또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 제석사지에서 출토된 와당을 분석하여 익산 지역의 궁성 관련 유적과 사원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건립되었음을 확인하고, 특히 왕궁리유적과 제석사지가 나란히 배치된 점에 주목하여 이곳이 백제 국가나 왕권의 직접적인 관여나 지원 속에서 조영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Ⅲ장에서는 사비도성의 왕궁구역과 사원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현재까지의 발굴자료와 고고유물을 바탕으로 구아리, 관북리, 쌍북리 일대를 왕궁구역으로 추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사비 도성의 왕궁과 주변 시설의 배치 양상에 관해 검토하였다. 특히 왕궁구역의 남쪽에 위치한 정림사지는 그 배치 양상이나 출토 유물을 통해 볼 때 왕궁과 함께 왕권을 수식하고, 도성을 장엄하는 가장 중요한 통합의례의 장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이것을 볼 때 익산 지역에서 조영된 왕궁리유적과 제석사지의 의도적인 배치는 그 전 단계인 사비도성에서 이미 연출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이것은 일본의 7세기대 왕궁이나 사원 유적과도 상통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밖에 관북리, 구아리 일대에서 확인되는 진북 방향과 중심축을 달리하는 배수시설들은 일본 斑鳩 지역이나 飛鳥宮의 1·2기 유구에 보이는 축선과 연관성이 크기 때문에 일본의 고대 도성에 보이는 偏向地割도 백제와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제기하였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