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武王代의 大唐外交
Ⅲ. 義慈王初 濟麗同盟의 형성에 관한 문제
Ⅳ. 羅唐同盟의 형성과 百濟의 멸망
Ⅴ. 맺음말
요약
백제가 당과 외교관계를 연 시기는 무왕대이다. 무왕은 삼국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성공적인 대당외교를 전개하였다.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한 것은 무엇보다 백제의 대고구려 견제와 관련이 있다. 고구려로부터 군사적 압력을 제거하기 위해 당을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왕의 대왕외교는 한편 고구려와 연결되는 이중외교 성격을 갖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밖에도 무왕은 대신라전의 성고적인 수행 및 전제왕권 확립이라는 대내적 정치개혁의 목표를 가지고 대당외교를 소행해 나갔다.
무왕 사후 의자왕대에 백제의 대당외교정책이 바뀌어 주목된다. 의자왕은 이제 독자적인 외교를 구사하고자 했는데 당과의 기존관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신라라는 최대의 공격목표를 위해 고구려와도 연결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백제의 대고구려접근은 당의 커다란 의심을 낳게 되었다. 이에 의자왕은 당 태종에게 사신을 보내 백제, 고구려가 동맹을 맺지 않았다는 해명을 하고 당의 고구려 공격에 군사적 협력을 약속하며 외교적 마찰을 해소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의 고구려 정벌이 실패하자 의자왕은 백제의 대신라공격에 대한 당의 간섭을 배제하고자 더욱 당에 대해 일정 간격을 두며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이런 백제의 대당외교정책은 신라로 하여금 당과 긴밀한 외교관계를 맺는 전기를 제공했다. 그결과 의자왕 8년 백제의 외교정책에 불만가진 당이 백제정벌을 위한 신라의 대당청병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당은 고구려침략에 미련을 못버려 백제침공을 바로 실행하지 않는다. 한편 당고종대에도 당이 신라와 더욱 밀접하면서 상호군사적인 협력을 논의하자, 의자왕은 집권 이후 정치적 안정을 발판으로 왜, 고구려와 관계를 강화하여 이런 외교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
그러나 의자왕 19년 끈질긴 신라의 요구에 당은 마침내 대백제공격을 실행한다. 의자왕 15년 이후 정치세력의 교체와 새로 등장한 세력이 국력을 급속도로 분산시키며 백제를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에 신라는 백제 병탄 모의를 하며 백제 공격을 주저하던 당을 끌어들였고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는 결국 멸망되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