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475년 이전 한강 하류 지역에서의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
Ⅲ. 475년 이전 남한강 유역의 영역 향배
Ⅳ. 475년 이후 한반도 중부 지역에서의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
Ⅴ. 475년 이후 남한강 유역의영역 향배
Ⅵ. 맺음말
요약
본고는 5~6세기 한반도 삼국의 국경의 변동에 관한 검토로 앞서 한강유역의 국경 변동에 관한 논의를 하나씩 검토하면서 필자 나름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한강 하류 지역은 396년 광개토왕의 남정을 계기로 한강의 북쪽 지역이 고구려 영역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하였다. 아단성 즉 지금의 서울시 광진구에 소재한 아차산성이 광개토왕릉비문에서 고구려에 공취된 58성 가운데 하나로 나온다는 것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 기존에는 광개토왕의 정복활동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경계는 한강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국경으로 기능했던 북쪽의 임진강이었을 것이라 추측하였으나 이는 선입견에서 나온 오해일뿐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광개토왕의 남정 결과 한강 이북 지역만이 아니라 한강의 중상류 지역, 특히 충주, 단양 등지를 포괄하는 남한강 유역도 고구려의 지배하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광개토왕릉비문과 삼국사기의 관련 기사에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원고구려비의 존재 자체가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450년 전후 충주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에 관해 기록한 중원고구려비는 475년 밳제의 수도 한성이 함락되기에 앞서 남한강 유역이 고구려 영역임을 말해준다.
475년 한성 함락 이후 한강 유역은 그동안의 통설처럼 고구려의 소유가 되었음을 재확인하였다. 근래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보이는 웅진도읍기 한성 및 한강 이북 지역 관련 기사를 근거로 475년 이후에도 백제가 한강 유역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이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사료적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해이다. 일본서기 관련 기사가 보여주는 상황 전개의 맥락과 더불어 최근 얻어진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고려할 때 이 시기에 고구려의 한강하류장악은 확실하다.
475년 이후 남한강 유역의 동향은 상당히 유동적이었을 수 있다. 그 이전부터 고구려의 지배가 확립되어 있던 지역이었기에 급격한 변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 지역으로 연결되는 정선과 영월 등지의 남한강 상류 지역의 경우 신라에 의해 비교적 일찍 장악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남한강 중류 지역에 해당하는 충주 지역이 6세기 초에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를 이룬 곳이라고 하는 최근의 신설은 현재로서 충분한 근거를 갖추었다 보기 힘들며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적지 않다.(맺음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