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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멸망 최후의 광경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93집
  • 저자 권덕영
  • 발행일 2014년 12월
  • 게재지 역사와 경계
  • 발행처 부산경남사학회

목차

Ⅰ. 머리말
Ⅱ. 사비성 전투
Ⅲ. 반역과 투항
Ⅳ. 죽은 자와 산 자
Ⅴ. 예씨 형제의 변명-맺음말을 대신하여

요약

최근 중국 산시성 시안시에서 백제 유민 예씨 일족 묘지 4점이 연이어 발굴되었다. 이들 묘지에는 예씨의 유래와 선조들의 활동을 비롯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백제가 멸망할 당시 예씨 일족의 역할을 소상하게 소개함으로써, 백제 멸망 최후의 광경을 보다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서기 660년 7월에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공격하자, 백제 의자왕은 사비성을 버리고 웅진으로 달아났다. 당시 北方의 治所로서 ‘군사도시’였던 웅진은 예씨 일족의 세력 근거지였다. 의자왕을 맞은 예군과 그의 아우 예식진은 18만 명에 이르는 나당연합군에 대적할 수 없다고 여기고, 웅진방령으로 추정되는 예군이 주동이 되어 반란을 일으켜 의자왕을 붙잡아 연합군에 넘기고 투항하였다.
신라와 당 연합군을 이끌고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은 의자왕과 왕자들을 비롯한 1만 2천여 명의 백제 포로를 데리고 당으로 돌아갔다. 당에 도착한 의자왕은 당 고종 앞에 포로로 끌려가 치욕을 당하고 얼마 후 그곳에서 죽어 낙양 북쪽의 邙山에 묻혔다. 반면 의자왕을 사로잡아 당에 바친 예군과 예식진 형제는 당으로부터 높은 관직을 받고 당 왕조를 위해 봉사하며 영화를 누렸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들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天壽를 다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에는 약탈과 파괴 그리고 대량의 인명살상이 수반된다. 특히 고대의 전쟁은 약탈전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사비성을 함락한 나당연합군이 웅진을 공격하면 웅진성은 중과부적으로 방어가 불가능하다. 전쟁에서 패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간다. 게다가 당시 의자왕은 이미 민심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씨 형제는 투항하는 길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백제 멸망에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후대의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필자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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