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사비로 천도하기 이전의 지방통치조직은 담로제였다. 이 담로는 마한연맹체를 구성한 소국을 편제단위로 해 성립되 것으로 이전 소국적 질서가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군성제가 성립되면서 5방이라는 상위의 지방총치조직이 마련되었고 그 치소로 방성이 설치되었으며 또 30~50에 이르는 중핵적 지방통치조직으로 군이 설치되었으며 200~250개에 달하는 많은 성이 새로 편제되었다. 지방관 명칭도 방령 군장 도사 등으로 개칭되었다. 따라서 이 변화는 단순히 명칭 개칭뿐 아니고 편제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 사비로 천도하는 과정을 거치며 종래의 소국적 질서가 파괴되고 200~250개의 성을 새로이 분치하기 위해선 종래와 다른 편제기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군성제 만들 때의 편제가준이 무엇인지 자료가 없어 분명히 하기 어려우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통해 통일신라가 주군현을 새로 편제할 때 전정호구를 기준으로 한 것과 전정호구가 군현이 되기에 부족한 지역은 향이나 부곡으로 한 것을 보여준다.
양서 신라전에 보이는 52읍륵을 통일 이후 주군현제로 정비한 것과 양서 백제전에 22담로제를 사비시대에 와서 방군성제로 전환한 것이 서로 대응되는 점, 백제의 천고과정에서 종래의 족적인 질서나 소국적 질서가 상당히 붕괴된 점, 신라가 려제를 통합하여 통일국가를 이루며 종래 질서를 재편한 점 등에서 통일 이후 실시된 신라의 지방통치조직의 편제방식을 원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백제는 방군성제를 실시하여 전국을 크게 5개의 방으로 나누고 방내의 지역은 전정호구라 하는 보다 객관적 기준위에 인구와 물산이 풍부하고 정치적 군사적 비중이 높은 지역을 방으로 하고 그보다 비중이 낮은 지역은 군으로 여타지역은 성으로 편제하였을 것이다. 무려왕은 집권력의 강화와 왕족의 중용을 통해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였고 수리시설의 정비와 유식자 귀농책 실시 등을 통해 전정과 호구에 대한 파악을 하였다. 이런 작업으로 백제는 각 지역의 전정호구의 정도와 지역세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성왕은 이를 토대로 전정호구라는 보다 객관적 기준 위에서 방군성을 편제하고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