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복신의 초기 활동과 결과
Ⅲ. 복신의 재등장과 부흥운동의 전개
Ⅳ. 복신의 도침 제거와 부흥운동의 주도
Ⅴ. 풍왕 옹립과 정국 운영의 실패
Ⅵ. 맺음말
요약
복신은 627년 백제 무왕이 적극적으로 추구한 신라 영토 확장에 관하여 국제적 분위기를 호의적으로 만들기 위한 임무를 가지고 외교 사신으로서 파견되었다. 그러나 당태종은 국서를 통하여 백제의 군사적 활동을 비난하였다. 복신은 627년 대중국 외교 실패의 책임으로 정치무대를 떠났으나 30년이 지나 백제부흥운동을 발판으로 다시 활동을 하게 된다. 주류성을 중심으로 신라와 당에 맞서고자 하였으며 661년 4월 두량이성, 고사비성 전쟁에서 이기면서 백제 부흥운동이 넓게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후 부흥운동의 동반자였던 도침이 당군과의 외교 협상에 노력했고 이에 급박해진 신라가 옹산성 전투를 일으켰다. 이 결과 다시 당과 신라의 유착관계가 형성되고 이는 부흥운동 초반을 주도한 도침의 정국 운영에 결함으로 이를 계기로 복신이 도침을 제거하게 되었다.
풍장에게 귀환요청을 하였던 661년 10월과 달리 661년 12월 왜에서 귀국하였을 당시의 풍장은 복신에게는 견제 대상이 되었으며 662년 5월 풍장이 백제왕이 되었으나 이후 전개는 복신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662년 7~8월 연이는 백제군의 패배는 복신 정권의 정치적 위상에 상당한 균열을 가져오게 하였고 거점 성들이 연이어 상실당하자 국면전화을 위해 662년 12월 피성 천도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663년 2월 남방 4주와 동방 덕안성 등을 상실하게 되면서 주류성을 재천도하기 까지 하게 되었고 663년 3월에는 왜군 27,000명이 파견되는 등 복신의 입지에 균열이 생기고 형식적 존재인 풍왕이 정치적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복신은 이러한 정국 변화의 새로운 돌파구로 풍왕을 제거하고자 결심했지만
복신의 음모를 눈치 챈 풍왕이 도리어 663년 6월 복신을 사로잡아 죽였다. (맺음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