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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현을 둘러싼 한국고대사의 몇 개 문제-문헌자료를 중심으로-(漢 郡縣을 둘러싼 한국고대사의 몇 개 문제-문헌자료를 중심으로-)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97권
  • 저자 김성한
  • 발행일 2014년 12월
  • 게재지 인문학연구
  • 발행처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목차

머리말
漢四郡의 설치와 東部·南部都尉
後漢代의 漢 郡縣과 樂浪國
帶方郡의 설치와 崎離營 전투
맺음말

요약

前漢의 武帝는 古朝鮮과 濊貊을 정벌하여 그 땅에 樂浪·眞番·臨屯·玄도 4郡을 설치하였고, 昭帝 때 眞番·臨屯 2郡을 폐지하고 樂浪·玄도 2郡에 병합하였다. 그 뒤 얼마 있어 玄도郡이 고구려 서북의 옛 眞番郡지역으로 옮겨져 樂浪郡의 영역이 넓어지자, 옛 玄도郡지역에 東部都尉를, 옛 臨屯郡지역에 南部都尉를 설치하였다. 後漢 초에 이들 都尉가 폐지되어 東部都尉에 속해 있던 縣들은 樂浪郡에서 자립하여 縣侯國이 되었으며, 南部都尉에 속해 있던 縣들은 다시 樂浪郡에 속하였다가 그 일부가 後漢 말에 설치된 帶方郡에 속하게 되었다. 오늘날 낙랑군은 평양 부근에 위치하고 대방군은 그 남쪽인 황해도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2郡을 병렬하여 기재하면서 대방군을 먼저하고 낙랑군을 나중에 한 것, 고구려가 요동군에 속한 서안평현을 공격하는 도중에 帶方縣을 공격한 것(중국 史書), 대방군의 고지에서 건국한 백제가 낙랑군의 西에 위치하였다고 한 것(『三國史記』) 등에 의하면, 대방군은 낙랑군의 南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동남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낙랑군의 치소도 평양이 아닌 다른 지역에 위치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三國史記』에 ‘樂浪王’·‘帶方王’이라는 칭호가 보여, 樂浪郡·帶方郡과 별개로 樂浪國·帶方國이 존재한 것처럼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이는 後漢 초 都尉가 폐지되고 그에 속해 있던 縣을 분리시키면서 그들을 縣侯國으로 한 것과 관련이 있다. 분리·독립된 縣侯國들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던 상급인 漢의 樂浪郡·帶方郡의 太守를 자신들이 ‘侯’인 까닭에 ‘樂浪王’·‘帶方王’으로 불렀다고 생각된다. 당시 樂浪郡·帶方郡과 별도로 樂浪國·帶方國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겠다. 『三國志』 韓傳에 三國의 魏는 帶方郡으로부터 辰韓 8국을 떼어내어 樂浪郡에 주어 통할하게 하자, “臣智激韓忿”하여 帶方郡의 崎離營을 공격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여기에서 “臣智激韓忿”은 서지학적으로 볼 때 “臣濆沽韓忿”임을 알 수 있다. 『三國志』에 樂浪郡·帶方郡이 반격하여 “滅韓”했다고 하여 이 ‘韓’이 앞에서 언급된 ‘臣濆沽韓’의 略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는 사실로부터 뒷받침된다. 馬韓에 속하면서 伯濟國과 함께 그 북방에 위치한 臣濆沽國은 辰王으로부터 優呼하는 호칭을 더해 받을 정도로 大國인 까닭에, 臣濆沽國의 몰락은 伯濟國이 이를 대신하여 大國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제공으로 생각된다.(필자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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