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관련 사료 및 연구사 검토
Ⅲ. 豊章 및 翹崎의 渡倭
Ⅳ. 豊章 과 翹崎의 관계
Ⅴ. 豊章 및 翹崎 일행의 성격과 渡倭 이유 및 목적
Ⅵ. 『日本書紀』 황극기 원년 기사에 보이는 백제 정변의 성격
Ⅶ. 맺음말
요약
백제사에서 무왕·의자왕 대의 정치적 상황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일본서기(日本書紀)』황극기(皇極紀)에 기록된 백제 정변의 성격과 이 정변에 관련된 인물들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이는 풍장(豊璋)과 교기(翹崎)가 어떤 인물인지 그들이 도래한 시기와 목적은 무엇인지, 이들이 관련된 백제 정변의 성격은 어떠한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日本書紀』를 비롯한 관련 사료와 연구사를 검토한 결과『日本書紀』서명기와 효덕기에 기록된 풍장은 의자왕의 동생으로, 631년 의자와의 태자 경쟁에서 패하여 왜에 외교 사절로 파견된 것으로 보인다. 황극기에 보이는 교기는 풍장의 아들로, 풍장이 왜로 보내진 이후 의자에 대한 견제세력의 중심인물로 활동하다가 의자왕 즉위 초반인 642년에 일어난 정변으로 인해 역시 왜에 외교사절로 보내졌다. 그러나『日本書紀』에는 풍장과 교기 관련 기사가 혼란을 일으켜 두 명에 대한 인명이 대단히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두 사람이 부자지간으로 비슷한 시기에 왜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기록상의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록들을 정리해보면『日本書紀』서명기의 풍장(豊章), 황극기의 여풍(餘豊), 효덕기의 풍장(豊璋)은 의자왕의 동생인 풍장으로, 631년에 왜로 보내진 인물이다. 그리고,『日本書紀』황극기의 교기(翹崎), 제명기의 豊璋, 제명기의 규해(?解)는 풍장의 아들인 교기로 642년에 왜로 보내졌다. 이 교기가 이후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났을 때 부흥 백제국의 왕으로 옹립되는 부여풍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구분해서 보면 사료상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하고 당시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642년 백제에서 일어난 정변의 성격을 정리하면, 이 정변은 의자왕이 즉위 후 자신을 견제하던 세력의 구심점인 국주모(國主母)가 사망하자, 그와 연결되어 있던, 풍장의 아들 교기와 내좌평 기미 등 핵심세력을 추방하여, 왜에 외교사절로 파견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변을 통해 의자왕은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의 직계를 중심으로 한 정치를 추진해 나갔던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