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고대 서산 지역의 주요 유적에 대한 검토
Ⅲ. 백제의 서산 지역 진출과 부장리 세력
Ⅳ. 南遷 이후 서산 지역의 편제와 그 성격
Ⅴ. 맺음말
요약
본고에서는 백제의 서산지역 진출과 운영을 중앙과 지역 발전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 서산 지역의 세력 변화와 백제에 의해 중요시된 이유를 밝히고자 하였다.
먼저, 제2장에서는 고대 서산지역의 주요 유적에 대한 검토를 하였다. 그 결과 주요 유적이 수계를 따라 위치하였고, 방어적 성격의 성과 결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천수만 권역은 청지천과 풍전천을 따라 예촌동과 읍내동 유적이 입지하였으며, 북주산성이 위치하였다. 대교천에는 기지리와 언암리 낫머리 유적이 있었으며, 반양리산성이 위치하였다. 내륙 깊숙한 곳에는 부장리 유적과 율목리 산성이 있었다. 가로림만과 서산만 권역에는 명지 고분과 부성산성이 이었다. 아산만 입구인 석문방조로는 용장천이 흐르며, 여미리 유적군이 전라산성과 더불어 위치하였다. 서산마애삼존불이 용장천 깊이 위치한 것은 이 수계가 중국과의 주요한 교통로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다음으로 제3장에서는 백제의 서산 지역 진출과 부장리 세력이 부상한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에 따르면 백제의 주요한 진출로는 천수만의 대교천 방면과 용장천 방면의 수로였다. 백제는 해안가에서부터 점차 내륙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부장리 지역은 천수만과 서산만, 석문방조제로 통할 수 있는 서산의 중심지에 위치하였고, 내륙에 있지만 수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교통로의 결절점이 되었다. 부장리 세력은 청동기시대부터 발달한 토착적 기반과 교통의 요충지를 활용하여 서산 지역을 묶을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부상하였다. 백제 또한 충남 서해안과 내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부장리 세력을 우대하였다.
끝으로 웅진천도 이후 백제의 서산 지역 편제와 그 성격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서산 지역에는 기군과 지육현이 확인된다. 기군은 서산 읍내 지역으로 북주산성이라는 방어성을 두고 있었다. 지육현은 부성산성이 치소이며, 해안 방어와 관련이 있었다. 여미리 지역은 여촌현으로 편제되었는데, 혜군의 관할 하에 있었다. 이곳은 석문 방조제 방향에서 용장천을 따라 내륙으로의 접근을 통제하는 곳이었다. 해미현과 고북면 일대에도 마시산군에 속한 우견현이 설치되었는데, 이 또한 천수만의 방어와 관련이 있었다. 백제시대 서산 지역에는 해안에서 접근하는 수로를 따라 군현이 설치되었다. 그 중에서도 기군은 중앙을 차지하며 방어선을 주도하면서 대중국 교통로의 요지에 위치하였다는 점에서 위상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