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세기 농업생산력의 발달은 구래 사회조직의 단위였던 읍락공동체를 변화시켰다. 그 변화는 읍락 내부 농민층의 계층분화와 더불어 읍락공동체의 해체를 결과하였고 결국 소국이나 부집단의 이중구조에 기초한 지배체제의 동요로 연결되었다. 이에 따라 4-6세기 고구려나 신라국가는 소국이나 부집단을 해체하고 그 내부의 일반민들과의 직접 지배관계를 내용으로 한 지배체제를 새롭게 구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체제를 보증하는 형식과 제도로서 주궁제를 또 이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법령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4-6세기 농업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사회변동은 국가가 광범한 읍락 내 소농민층들을 직접 지배, 통제할 수 있는 지배체제의 형성을 결과한 것으로 결론을 맺을 수 있다.
이후에는 고리대를 매개로 한 귀족관료층, 사원세력, 부호농민층의 사유지 확대에 따른 소농민층의 파산과 몰락, 그리고 거주지나 토지에서의 유리를 항상화하였다. 이런 현상의 심화는 국가 수취기반의 감소로 이어졌다. 국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소농민 안정책과 통제책을 실시하거나 대토지소유자층의 사유지 확대를 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국가의 소농민 안정책과 대토지 소유자층의 토지소유와 겸병의 확대 사이의 긴장 속에서 역사가 전개되었고 그러한 긴장관계의 이완은 통일신라의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발전하여 소농민층의 파산, 몰락, 유리를 증대시켰으며 소농민층의 광범한 도적화와 저항을 일으킨 주요 요인이 되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