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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시조전승과 시조묘의례(百濟의 始祖傳承과 始祖廟儀禮)

  • 분류 문헌 > 종교·사상
  • 권호수 제13집
  • 저자 박승범
  • 발행일 2000년 6월
  • 게재지 동양고전연구
  • 발행처 동양고전학회

목차

I. 머리말
II. 시조전승
III. 시조묘의례
1. 동명묘
2. 구태묘
IV. 맺음말

요약

백제의 시조묘 의례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고대 국가권력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기능을 갖고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는 시조전승에서 알 수 있듯이 건국시조가 神格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인식되지 않았던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주변의 마한세력의 영향력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왕실의 권위는 그만큼 낮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백제는 왕실과 지배귀족집단의 분란이 있을 경우 범부여계 공동시조인 동명을 모신 시조묘 의례를 통하여 지배집단 내의 결속을 의도하였다. 즉 현실적․정치적 목적에 의해 필요할 경우 ‘謁東明廟’가 이루어질 뿐이었다. 오히려 왕실의 신성성과 지배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것은 祭天地였다. 왕실은 시조묘 의례를 통해서 보다는 영역 내 피지배 집단의 지배에 대한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이념적 장치로 마한 전통의 天君에 의한 제천의례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또한 시조동명묘 의례는 고구려의 천하관에 의해 지속될 수 없었으나, 사비로 천도한 이후 구태묘를 세움으로써 백제는 국초부터 유지하고 있었던 부여계승의식을 다시 표방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구태묘도 왕실과 지배귀족집단 사이의 정치적 균형추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백제의 시조묘 의례는 지배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이념적 상징의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의례가 행해지는 시기로 볼 때 신년의례로서의 성격이 앞섰던 것이었고, 그나마 그러한 의례를 모든 왕들이 행했던 것도 아니었다. 백제에 있어서 지배이념의 상징적 표현행위는 시조묘에서 보다는 제천지 의례를 통해서 구현되었다. 즉 마한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복속된 지역에 대한 지배의 당위성과 지배자의 신성성을 天과 五帝神에 대한 제의를 통해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가 보다 정확하기 위해서는 백제 불교와 왕실 및 지배 귀족집단 간의 관계에 보다 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백제사 전시기에 걸쳐 나나타나는 지배집단의 유형과 성격, 왕실교체문제도 고려해야 만이 백제사에서 시조묘 의례가 갖는 의미가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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