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자료 DIGITAL ARCHIVE

검색

문헌

백제 성주산 신앙과 성주사(百濟 聖住山 信仰과 聖住寺)

  • 분류 문헌 > 종교·사상
  • 권호수 제22호
  • 저자 신동하
  • 발행일 2009년 4월
  • 게재지 불교학연구
  • 발행처 불교학연구회

목차

머리말
Ⅰ. 관련기록 문제
Ⅱ. 百濟의 北嶽 聖住山
Ⅲ. 聖住山과 聖住寺
Ⅳ. 百濟 聖住山 信仰과 그 발전
맺음말

요약

성주사와 성주산 관련 사료인 『해동고승전』, 『낭혜화상비』, 『성주사사적』을 연계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백제 성주산 신앙의 성격과 성주사의 변동을 밝혔다.
백제의 오합사가 있던 성주산은 오악 중 북악으로 여겨져 국가제사가 모셔졌다. 백제가 망한 후 퇴락의 과정을 겪기도 하다가 무염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이곳에 머무르면서 오합사는 성주사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고, 성주산은 숭엄산으로 불리웠다. 숭엄산은 고려 중기 이후에는 다시 성주산으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게 됐다.
성주산은 사비 도읍 시대 서해안 방면의 요충지로서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시되었다. 백제 왕실은 사비로 천도하면서 국권을 회복하려는 목적으로 국토를 재인식하고 재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성주산은 서북 방면의 요충으로 주목되었다. 오악의 편제는 국토 내의 중요한 산악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주산이 지닌 신성성에는 전통적 산악신앙의 흐름 위에 불교적 신성성이 부여되었다. 불교에서 불보살이 머무는 곳은 환희, 吉祥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산악이 원래 종교적 신성성에 보다 다양한 이상적 경지를 제공하였다. 이는 단지 수식적 의미만이 아니라 불보살의경지로의 승격을 의미하며 백제 국토 내에 불보살이 산다는 불국토사상의 존재를 암시하는 내용인 것이다.
백제에서 성주산은 관음보살이 사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백제의 관음신앙은 『법화경』에 근거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해안을 배경으로 한 삶의 비중이 큰 백제에서 바다의 수호신으로서 관음에 대한 신앙을 수용한 것이었다. 서해안 방면의 요충지로 여겨진 성주산은 관음의 주처로 여겨졌다. 오합사는 북악신에 대한 祭場임과 동시에 관음신앙의 도량이었다.
무염은 성주산이 지닌 전통적 종교적 의미에 주목했다. 그는 무열왕계의 유력한 인물인 김흔, 김양으로부터 주석을 요청받았으며 문성왕 등 여러 왕들의 귀의를 받았다. 무염이 이렇게 왕실, 귀족의 존숭을 받게 된 배경에는 高德僧이었던 데에도 기인한 것이지만, 무열왕계 귀족의 정신적 귀의처를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염은 성주사와 성주산에서 종교적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다. 백제의 북악이자 관음도량인 성주산과 성주사는 무열계 귀족들에게 지방적 세력근거지의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필자 요약)

동일한 곳에서 발행한 자료

  • 문헌 > 종교·사상 백제 후기의 불교학의 전개과정
    • 발행처불교학연구회 
    • 저자최연식 
    • 발간년도 
    • 게제지불교학연구 제28호 
    자료카드

'신동하'님께서 발행한 자료

  • 문헌 > 기타 한국고대국가의 관등제와 신분제(韓國古代國家의 官等制와 身分制)
    • 발행처동덕여자대학교 
    • 저자신동하 
    • 발간년도 
    • 게제지동대논총 제13집 
    자료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