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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료상에 나타난 한반도와 일본열도 거주민의 실체 및 상호인식-B.C. 2C~A.D.4C 한과 왜를 중심으로(古代史料上에 나타난 韓半島와 日本列島 居住民의 실체 및 상호인식-B.C. 2C~A.D.4C 韓과 倭를 중심으로)

  • 분류 문헌 > 기타
  • 권호수 제67집
  • 저자 김선숙
  • 발행일 2009년 9월
  • 게재지 대동문화연구
  • 발행처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목차

Ⅰ. 머리말
Ⅱ. 中國側 史料上의 韓과 倭
Ⅲ. 韓日兩國 史料上의 韓과 倭
Ⅳ. 맺음말

요약

韓이 정치체로서 중국왕조와 본격적으로 접촉한 시기는 後漢代부터다. 그러나 韓이 중국왕조에 처음 알려진 계기는 前漢時代에 衛滿朝鮮과의 전쟁에서 패한 조선왕 準이 한반도 남부로 도망하면서부터다. 그리고 韓이 점차 馬韓․辰韓․弁韓등의 三韓으로 나뉘어져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세기 이후 한반도 중․남부 지역이 중국대륙 및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의 정치적 변화에 큰 영향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倭가 처음 중국왕조에 알려진 시점은 漢武帝가 조선을 멸하고 漢四郡이 설치된 이후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 漢의 사신이 그들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성사된 것은 아니다. 일본열도거주 왜인들이 조선에 설치된 漢의 군현인 낙랑에 來獻하면서부터다.
그런데 漢人들은 처음부터 왜인을 일본열도에 거주하는 주민으로만 한정시켜 이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에 관련하여 중국의 역사기록물에는 부정확한 설명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 長江流域원주민으로서 각지에 이동분포한 민족을 비칭하는 왜인이라는 族名을 일본열도 왜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시켰던 것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의 역사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남겨지게 된다.
한국측 사료에 나타나는 왜란 호칭 역시 漢人들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즉, 한반도인들은 처음부터 일본열도거주민을 倭人으로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비록 일본열도에 거주하며 한반도 남부지역을 왕래하던 사람들에 대한 존재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애초부터 이들을 倭人으로 호칭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왜라는 族名은 韓人과 漢人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비로소 칭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측 사료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일본측 사료에 보이는 韓은 일본열도에 빈번히 이주 또는 교류하던 한반도 남부지역, 특히 김해․부산지역 거주민들이 자신들을 ‘가라’로 불렀는데 나중에 漢王朝와 교섭하게 된 왜인들이 한반도 남부지역민에 대한 漢式기술용어인 韓이란 글자를 수용함으로써 이후 한반도 전지역 거주민을 가리키는 용어로 확대시켜 사용하였다고 판단된다. (필자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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