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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왕대 마한정복기사의 재고찰(溫祚王代 馬韓征服記事의 재고찰)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46호
  • 저자 유현용
  • 발행일 1997년 12월
  • 게재지 사총
  • 발행처 고대사학회

목차

머리말
1. 마한정복의 발단 : 온조 24년조 분석
2. 마한정복의 계기 : 온조 25년조 분석
3. 마한정복의 과정
1) 온조 26년 7월조 기사 분석
2) 온조 26년 10월조 기사 분석
4. 마한정복의 결과
1) 온조 27년조 기사 분석
2) 온조 34-36년조 기사 분석
5. 맺음말

요약

溫祚 24年條에서 36年條에 걸치는 馬韓征服 記錄들의 내용을 검토해 본 결과 溫祚王代 馬韓征服 記事들은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을 잘 반영하고 있어서 史料的 價値가 높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이 기사들은 馬韓을 정복하는 溫祚 26,27年條를 중심으로, 24年條와 25年條의 記事에서는 征服의 原因을, 34年條와 36年條 記事에서는 征服의 結果를 보여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記事들은 近肖古王에서 近仇首王代의 사실일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먼저 溫祚 25,26年條 記事를 분석해 본 결과 溫祚王代 馬韓征服 記事의 실제연대는 AD 313년에서 AD 369년 사이에 비정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溫祚 34년조의 기사를 통하여 百濟의 馬韓정복은 近肖古王代에 이루어졌으며, 近肖古王이 죽고 近仇首王이 즉위하는 혼란기를 틈타 舊馬韓세력이 고구려와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하였다가 실패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溫祚王代 馬韓征服 記事의 실제연대는 近肖古王代에서 近仇首王代에 이르는 시기에 비정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日本書紀』神功 49年條 기사와의 비교를 통해서도 추정할 수 있었다. 한편 이때 멸망한 馬韓세력은 종래 파악되어 왔듯이 稷山 혹은 禮山에 비정되는 目支國세력이 아니라 益山 중심의 금강세력으로 파악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溫祚 26년조에 보이는 圓山과 錦峴(전북 전주와 진안으로 추정), 溫祚 36년조의 古沙夫里(전북 고부)에 대한 지명비정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百濟는 益山에 國邑을 두고 있던 馬韓을 정복함으로써 전라북도 지방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초기에는 舊馬韓지방을 간접적으로 통치하여 나갔지만, 近仇首王代 일어난 周勤의 馬韓부흥운동으로 말미암아 古阜에 성을 쌓으면서 직접지배의 길로 통치의 방향을 선회하였던 것이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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