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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백제의 가야진출과 그 성격(6세기 百濟의 加耶진출과 그 성격)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27집
  • 저자 김애경
  • 발행일 2000년 12월
  • 게재지 이화사학연구
  • 발행처 이화사학연구소

목차

Ⅰ. 서론
Ⅱ. 百濟의 伽倻진출 배경
1. 국내외 정치상황의 변화
2. 伽倻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Ⅲ. 6세기 전반 百濟의 伽倻진출 과정
1. 蟾津江 유역 확보-己汶. 帶沙진출
2. 南部加耶 진출-乞乇城 進駐와 任那復興會議
Ⅳ. 管山城 전투와 百濟의 加耶진출 좌절
Ⅴ. 결론-百濟의 加耶진출에 대한 평가

요약

百濟는 웅진천도와 사비천도를 거치며 대내적 안정을 이루고 중국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한편 高句麗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新羅의 동조를 얻음으로써 새로운 도약기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국가체제의 발전을 바탕으로 武寧王, 聖王대에 이르러 가야지역으로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가야지역은 일찍이 농업 생산력과 철의 생산이라는 경제적 기반 위에서 정치적 역량을 발전시켰다. 百濟는 이미 4세기경 김제 벽골제를 쌓는 등 농업생산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百濟에 있어서 475년 熊津으로의 천도 이후 급선무는 그때까지 百濟의 생산력의 기반이었던 한강, 임진강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경기도 일대가 高句麗의 세력 하에 편입됨에 따라 이에 대처할 만한 새로운 농업생산지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웅진천도 이후 百濟가 적극적으로 가야진출을 시도하게 된 계기도 이러한 새로운 생산지의 개척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加耶諸國은 농업기반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倭, 中國으로 통하는 대외교역의 창구였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 가야지역에서의 철 생산이었다. 고대사회에서 철의 생산은 철제 농기구의 제작을 용이하게 하여 농업 생산력을 높일 수 있게 하고, 무기 제작을 통해 무력 기반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百濟는 이러한 가야제국을 통해 倭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백제는 한강유역 상실 후 국가 최대의 위기를 섬진강 유역과 가야지역 진출을 통해 극복하고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섬진강 유역 점령을 통해 가야세력을 위축시키고 신라를 견제하였으며 왜와 긴밀한 교역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왜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관산성전투 이전까지 百濟는 임나부흥회의 등 외교적 노력을 통해 加耶諸國에게 新羅의 서진을 더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시키고 이를 막기 위해 百濟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도록 하였다. 551년과 554년 전투에서 百濟의 동원에 의해 가야군이 참여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방적으로 百濟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또한 백제가 고구려와의 전투에 주력하기 위해 신라와의 직접대결을 피하고 가야지역을 완충지대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관철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연구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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