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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년 신라·백제·당나라의 취리산 회맹문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26호
  • 저자 박찬흥
  • 발행일 2006년
  • 게재지 내일을 여는 역사
  • 발행처 서해문집

목차

신라, 당나라의 강요로 백제와 회맹을 맺다
회맹문의 구성과 내용
회맹문에 보이는 당나라의 역할
중국의 회맹과 취리산 회맹
취리산 회맹의 성격

요약

본고에서는 이미 멸망한 백제를 다시 세워 신라와 회맹을 맺도록 강요한 목적은 무엇이며, 취리산 회맹문에 그러한 의도가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었는지, 그리고 신라는 이러한 당나라의 강요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검토했다.
당시 당나라는 고구려와의 전쟁을 앞둔 시점에서, 신라의 협조가 필요했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계속 실패로 돌아가자, 지구전 형태로 전환하면서, 배후의 백제를 먼저 공격하는 것으로 전술을 바꾸었다. 647년 당과 신라는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땅은 신라가 갖는다는 밀약을 맺었다. 그런데 이를 어기고 당나라는 백제를 신라와 회맹을 맺게 하였다. 당나라는 신라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두 차례 회맹을 맺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663년 이미 드러났다.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으로 임명한 것이다. 한반도 지역이 계림대도독부와 웅진도독부로 나뉘어 있으면서 서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동시에 당나라에 의해 관리되고 간섭이 이루어지는 분열 상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당나라가 회맹을 주관한 근본적인 목적이고 이러한 당나라의 의도가 나타난 것이 취리산 회맹문이었다.
물론 신라는 어쩔 수 없이 취리산 회맹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나라가 더욱더 노골적으로 신라를 압박해 들어오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 옛 백제지역을 복속하고, 고구려 부흥군을 지원하였고, 결국 당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당나라 세력을 대동강 북쪽으로 쫓아냈다. 하지만 신라는 백제 병합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였고, 당나라는 신라를 당나라 중심의 국제 질서 체계 안으로 편입시켰다는 점에서 서로의 절충점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신라가 대동강 이남의 옛 고구려 땅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지방 제도로 편입한 것은 735년(성덕왕34)에 가서 당나라의 승인을 얻고 난 뒤였다. 더구나 그것은 발해를 협공하라는 당나라의 요구에 응하여 군사를 내어 발해를 공격했다가 성과 없이 돌아온 대가였다. 이 점에서 취리산 회맹문에 나타난 당의 의도, 즉 당나라 중심의 세계 질서를 구축하여 신라를 그 세력권 속에 편입시켜 두려했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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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처수선사학회 
    • 저자박찬흥 
    • 발간년도 
    • 게제지사림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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