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자료 DIGITAL ARCHIVE

검색

문헌

부여·고구려 건국신화의 계통과 형성과정 -『삼국유사』 북부여조 인용 ‘고기’에 대한 분석을 실마리로 하여-(부여·고구려 건국신화의 계통과 형성과정 -『三國遺事』 북부여조 인용 ‘古記’에 대한 분석을 실마리로 하여-)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34호
  • 저자 박기범
  • 발행일 2011년 12월
  • 게재지 동북아역사논총
  • 발행처 동북아역사재단

목차

Ⅰ. 머리말
Ⅱ. 『삼국유사』 북부여조의 기초적 검토
Ⅲ. 동명신화와 북부여․동부여의 건국 신화
Ⅳ. 고구려 건국신화의 형성과정
Ⅴ. 맺음말

요약

『삼국유사』 북부여조에 인용되어 있는 ‘古記’의 전승은 비록 그 내용이 소략하지만, 북부여의 실체, 부여와 고구려를 비롯한 부여계 국가들의 건국신화의 계통과 성립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 전승의 실체는 바로 북부여의 건국신화로써, 고구려 건국신화와는 애초 관계가 없는 독립된 전승이었다. 이 전승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지는 않은데, 원래의 모습은 解慕漱(父)+河伯女(母)→解夫婁의 계보관계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삼국유사』 북부여조를 제외한 다른 관련 기록들에서는 해모수와 해부루가 아무런 혈연관계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해모수―해부루 신화가 고구려 건국신화에 포함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변용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북부여 건국신화와 부여 동명신화의 관계이다. 북부여 건국신화는 구조상 단군신화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영웅전승적 성격을 갖는 부여의 동명신화와는 계통적으로 서로 연관성이 없다. 따라서 두 신화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면 부여와 북부여를 서로 다른 실체로 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부여와 북부여를 동일시하는 기존의 입장에 서는 한 양 신화의 관계에 대한 합리적 설명은 불가능하다. 또한 해부루―금와로 이어지는 동부여 천도설화 역시 계통적으로 독립된 동부여의 건국설화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출현 신화(emergence myth)의 일종으로써 앞의 두 신화 모두와 성립기반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북부여 건국신화와 동부여 건국설화, 동명신화를 엄격히 구분하여 고찰해야 함은 물론, 그 바탕 위에서 고구려 건국화의 구성 과정과, 부여족에 있어 해부루가 갖는 의미, 고구려·백제의 부여 계승의식 등에 대한 문제가 새롭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구려 건국신화의 구성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구려 초기의 신화는 북부여 건국신화와 일정한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면서도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동명신화의 이야기 구조를 차용하여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북부여 신화에 등장하는 해모수나 해부루의 이름은 포함되지 않았고, 하백녀만이 주몽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周書』 고구려전에 기록된 6세기 고구려의 제사체계는 이러한 신화 구조가 6세기까지 유지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해모수와 해부루 등이 포함된 현전하는 고구려 건국신화의 형태는 고구려 후기 『周書』 편찬 단계에 가서야 만들어진다. 그것은 고구려 내에 포함되어 있던 부여계 국가들의 신화를 하나로 통합하여 6세기 후반 이래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려는 사상적 통합책에서 기인한 작업이었다. (연구원 요약)

동일한 곳에서 발행한 자료

  • 문헌 > 정치·외교 5~6세기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 : 고구려의 한강유역 점령과 상실을 중심으로
    • 발행처동북아역사재단 
    • 저자노중국 
    • 발간년도 
    • 게제지북방사논총 제11호 
    자료카드

'박기범'님께서 발행한 자료

  • 문헌 > 정치·외교 백제 초기 정치체제의 성립과정과 구조적 특질
    • 발행처백제학회 
    • 저자박기범 
    • 발간년도 
    • 게제지백제학보 제4권 
    자료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