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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성왕·위덕왕대의 왜계백제관료(백제 聖王·威德王代의 倭系百濟官僚)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39호
  • 저자 박찬흥
  • 발행일 2011년 6월
  • 게재지 사림
  • 발행처 수선사학회

목차

I. 머리말
II. 왜계백제관료의 개념과 구성원
III. 왜계백제관료의 형성 배경과 성왕대의 역할
IV. 위덕왕대 달솔 일라와 왜계백제관료의 소멸
V. 맺음말

요약

왜계백제관료는 ‘百濟의 位階를 가진 日本人系 百濟官僚이고, 본질적으로는 백제관료이면서 일본과도 깊은 親緣關係로 맺어져 있는 특수관료’나, ‘大和政權의 氏와 姓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제의 官位 또는 官職을 가지고 백제에 滯在하면서 백제를 위해 활동한 사람들’이다. 즉 ‘혈연적 또는 지역적으로 倭 계통의 인물로서 백제의 관등을 수여 받고 백제를 위해서 일했던 관료’로서, 기본적으로 백제에만 소속된 관료이다.
왜계백제관료는 모두 『일본서기』에만 보인다. 백제 관등 표기가 기록에 보이는 인물로 한정할 경우, 紀臣 奈率 彌麻沙, 物部 施德 麻奇牟, 上部德率 科野次酒, 物部連 奈率 用奇多, 許勢 奈率 奇麻, 物部 奈率 奇非, 上部 奈率 科野新羅, 上部 奈率 物部烏, 達率 日羅이다. 日羅를 제외하면 모두 성왕 때의 인물이고, 특히 흠명천황 2~15년(541~554) 즉 성왕 19~31년 사이에 활동하였다.
왜계백제관료가 되었던 성씨는 物部氏, 紀氏, 科野氏, 許勢氏 등으로 몇몇 씨족에 한정되어 있고, 그 가운데 物部氏가 가장 많다. 소속 部는 上部가 많고, 관등은 위덕왕대의 日羅만 達率(2등)이고 德率(4등) 1인, 奈率(6등) 6인, 施德(8등) 등으로 대체로 중급 관료로 임명되었다.
왜계백제관료가 이른바 한반도정토에 참여했던 호족의 자손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따르기 어렵다. 왜계백제관료는 大和 정권과는 별도로 畿內를 중심으로 한 유력한 호족세력이 직접 파견하여 백제관료로 발탁되었다.
5세기 백제는 왕족을 보내, 백제에서 河內에 집단적으로 이주한 백제인들을 직접 통제하였다. 아마도 왜계백제관료를 파견한 호족은 이들 백제인 집단 이주세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왕족을 보내 일본열도로 집단 이주한 백제인을 통제하고 있던 거주지가, 威德王때 九州 筑紫에 건설하려고 했던 新國이었을 것이다.
성왕대의 왜계백제관료는 백제에서 선진문물을 가져다 소속 호족에게 제공해주고, 대신 그 호족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게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것이 이른바 備兵관계인데, 왜계백제관료는 이러한 용병관계를 중간에서 매개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6세기 후반 大和 정권의 정치세력이 蘇我氏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왜계 백제관료는 더 이상 공급원을 상실하게 되었고, 583년 達率 日羅가 사망하고 九州에 건설하려던 新國이 좌절되면서 왜계백제관료는 소멸하였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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