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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창건과 백제·왜의 교섭(‘大寺’창건과 百濟·倭의 교섭)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34집
  • 저자 이다운
  • 발행일 2013년 3월
  • 게재지 동북아문화연구
  • 발행처 동북아시아문화학회

목차

I. 머리말
II. 미륵사 서원 석탑 건립
III. 제석사 소실과 중건
IV. 백제대사 창건
1. 문헌을 통해 본 백제대사
2. 유구·유물을 통해 본 백제대사
V. 백제와 왜의 교섭
VI. 맺음말

요약

무왕은 왕권강화를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미륵사와 제석사를 창건하였다. 이들 사찰은 모두 익산에 창건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륵사 서원 석탑의 건립 연대와 제석사의 소실 연대가 639년이라는 점, 그리고 백제 최대 규모의 사찰, 즉 ‘대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륵사 사리봉안기를 통해 당시(639)의 왕권은 위축되었고 상대적으로 사택씨의 권위가 신장했던 것으로 추측하였다. 같은 해에 소실된 제석사도 사택씨를 비롯한 왕권을 견제하려는 세력들에 의한 소행으로 보았다. 이 세력들이란 의자왕 즉위 이듬해에 왜로 추방된 인물들일 가능성이 높다.
무왕은 왕권 중심의 새로운 지배체제 확립을 목적으로 부여가 아닌 신도(新都) 익산에 왕궝과 함께 ‘대사’를 발원하였지만 조영 도중에 왕권은 약해지고 미륵사 창건 주도권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제석사 중건을 통해 왕권을 회복하였다.
왜에서는 639년 왜왕이 처음으로 사찰을 창건하고 명칭을 백제대사로 정하였다. 기존의 정치적 중심지 아스카가 아닌 새로운 백제천변에 창건한 것은 소가노 우지(蘇我氏)에 대한 대항의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가노 우지의 비조사를 압도하는 당대 최대 규모로 창건하였고 목탑도 미증유의 9층으로 건립하였다.
또한 사찰 명칭을 백제로 정하여 친백제 성향을 강조한 것은, 소가노 우지가 백제불교 수용과 아스카테라 창건을 통해 타 귀족과 차별화하여 권력 강화 배경으로 삼았던, 역사적 사건에서 학습한 것이다. 즉 이전과 다른 친백제적인 왕실을 대내외적으로 발양하여 소가노 우지를 능가하는 권력 강화를 추구한 정치적 의지로 풀이된다.
죠메이의 ‘대사’창건 목적은 무왕의 ‘대사’창건을 통한 왕권강화정책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백제궁을 백제대사와 함께 아스카에서 떨어진 곳에 조영한 것도 무왕의 익산경영과 유사하다. 이는 백제와의 교섭에 의한 결과로 이해되는데, 교섭 이상의 정책 공유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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