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자료 DIGITAL ARCHIVE

검색

문헌

백제와 중국의 불교교섭에 대하여(百濟と中國の佛敎交涉について)

  • 분류 문헌 > 정치·외교
  • 권호수 제4,5집
  • 저자 牧田諦亮
  • 발행일 1982년 7월
  • 게재지 마한백제문화
  • 발행처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목차

* 목차 없음

요약

백제와 양과의 교섭은 한동안 백제의 무령왕 2년에서 양이 멸망하는 백제의 위덕왕 3년에 한정된다. 널리 중국과 백제와의 국교에 대해서는 중국의 기재에서는 송서, 남제서, 양서, 남사, 등의 정사의 백제전을 볼 수 있나 각 정사 백제전에 대한 개별적 역주로서 양국의 교섭은 해로, 육로 등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기대된다.
양무제가 즉위한 천감원년에는 백제에 대해서도 남제의 무제가 모대를 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에 임하게 했다. 이에 의해 그같은 장군호를 정동장군에 승진시키기도 했다. 이는 양무제본기에도 기록하고 있다. 이 해에 왕은 사거하여 무령왕이 즉위하고 양에는 실로 20년 늦게 무제 보통2년 12월에 사자를 파견한다. 이는 고구려와 항쟁의 결과로 생각된다. 무령왕 사후 양에 신사한 것은 변함이 없다. 무제의 나이가 칠순을 넘어 불교에 심취하여 실정하는 듯 혼란한 시기였으나 백제는 모시박사, 화사, 공장 등의 파견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백제인 발정이 양조에서 삼심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모국에 돌아올 때, 건강에서의 여정은 아마 해로를 취하기 위한 여정일 것이다. 백제와 양의 왕복은 해로를 통하는 것이 안전하고 용이할 것이다.
한편 무제 최후의 해인 태청3년 봄에는 양의 사신과 더불어 각덕이 신라에 돌아왔음도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은 당시 중국 양왕조의 신라와 백제 등에 대응하는 외교정책의 하나였을지 모른다. 양 무제의 불교 귀의 및 사신 등이 백제 불교의 성왕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백제불교의 특징으로 율법주의나 관음신앙 등의 제문제와 더불어 불교의례상의 살생금단이 백제에 전해져 어로 도구까지 불사른 것등이 무제가 행한 것과 비교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구원 요약)

동일한 곳에서 발행한 자료

  • 문헌 > 기타 고도 익산의 진정성에 관한 다각적 분석(古都 益山의 眞正性에 관한 多角的 分析)
    • 발행처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 저자이도학 
    • 발간년도 
    • 게제지마한, 백제연구 제19집 
    자료카드

'牧田諦亮'님께서 발행한 자료

  • 牧田諦亮 님께서 추가 발행한 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