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쌍탑양식가람은 삼국 백제에도 전하여지고 백제를 통하여 일본에도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 가람의 일례와 삼소가람으로 기록되는 익산 미륵사 등과 백제의 쌍탑양식 가람의 관련성을 통하여 일본과 백제와의 문화적 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가람은 금당 다음에는 탑파라 하고 있는 것처럼 필요의 순서에 따라 건립 완성하는 것이겠으나 약사사 건립연대 이전의 옥와에 따른 관계에 무관하게 쌍탑양식가람이 약사사 건립이후에 발상한 것이라 이해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백제도래공장에 의해 건립되어진 일본 최고의 가람 아스카현 비조사의 동금당, 서금당 및 서대문이 백제고도 부여의 정림사 금당 및 중문의 그들에 거의 합치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 일탑삼금당양식가람이 고구려의 금강사 및 기타의 선례가 있지만 공장의 건축기술뿐 아니라 가람양식 전체의 설계도와 더불어 전래하고 당초부터 계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백제옥와의 직계로 믿어지는 비조사의 최고형식단환와는 주요당탑뿐 아니라 사지북변의 축단 및 북문까지 사용되어진 사실을 미루어 보면 각개사원의 최고옥와는 가람양식과 당초부터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조사와 더불어 일본최고의 사원의 하나인 사천왕사의 최고옥와와 동범의 것을 공유하는 오사카지방의 미륵신앙의 존재도 미륵신앙을 명증한다. 백제의 쌍탑양식가람은 미륵신앙과도 형영상반하여 전래되어진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