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사탑의 건립 시기에 관하여 발굴된 유구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고찰하였고 아울러 참고하여야 할 상황근거를 들어 고찰한 것으로 그 결과, 필자는 정림사가 미륵사보다 먼저 창건된 사찰임에는 틀림없으나 정림사 창건시의 탑은 목조탑이었고 뒤에 그 목탑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지금의 석탑이 건립된 것이며 그 시기는 미륵사탑이 건립된 뒤의 일이라고 믿고 싶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는 이것을 단정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발굴결과 알려진 유구의 현황과 간접적인 근거이기는 하나 백제 사찰에서는 목조탑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석탑 형태와 구조의 일반적인 전개 경로 및 석탑 유행의 공백기 등을 고려할 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혹 어느 때인가 정림사탑을 해체하는 일이 있으면 이 문제에 대한 명백한 확증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그것은 기단 지대석 하부의 기단석재들의 상태를 알게 될 것이며 또 어쩌면 목탑의 심초가 남아있을 수 있고 혹은 심초를 들어낸 분명한 증거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림사지 발굴조사에서 얻어진 내용을 상세히 밝힌 조사보고서 정림사는 유적의 정밀한 조사 결과와 출토유물에 대한 정확한 고증 등에 의하여 백제 문화 구명이나 우리나라 고대건축사연구에 크게 공헌한 기본자료로서 그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다만 그 극히 부분적인 문제인 석탑하부 및 그 주변의 유적상황에 대한 이해에 약간의 문제, 즉 지표상에 융기된 굴광판축기단상의 융기된 부분을 소제하여 석탑을 건립한 경우에도 조사에서 밝혀진 유구상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석탑 건립연대를 판단하였기 때문에 석탑건립 시기에 대한 큰 혼란을 야기하게 된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