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창건된 사찰 가운데 지금까지 발굴조사되어 그 유구의 내용이 잘 밝혀진 것은 많지 않다. 사비천도 후에 부여를 중심으로 그 주변과 익산지역에 남아 있는데 이들 가운데 발굴조사되어 그 유구내용이 잘 밝혀진 군수리폐사, 동남리폐사, 정림사, 금강사 및 미륵사 등을 중심으로 각 사찰지의 구조의 특성을 살피고 고구려, 신라 사찰지와의 비교 분석으로 백제 가람의 특성을 찾고자 한다.
정림사 금당의 기단형식과 금강사 강당이나 승방 기단 등으로 보아 고구려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미륵사 탑이나 금당, 강당 등의 기단 세부에서 신라와 같은 지대석이나 갑석에 한 단의 꺾임이 없는 점 등 신라 조형에 비해 매우 기능적이다. 정림사나 미륵사에서 확인된 계단의 구성이 신라와 상통하면서도 지대석과 계단의 첫 디딤돌에서 서로 차이가 있는 것은 백제적 기법을 보이는 것이다. 또 정림사나 미륵사에서 확인된 금당과 탑이 모두 같은 양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 이중기단으로 된 것도 신라 같이 금당이 탑보다 한단 낮은 기단을 갖는 것에 비해 조형적인 큰 특성이며 백제의 석가여래와 그 사찰의 본존을 동격으로 대하고 그 사찰의 본존을 석가여래보다 낮게 생각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정림사탑이나 금강사 탑, 금당 및 중문, 그리고 군수리폐사의 탑 등에서 굴광판축기법으로 기단 축조가 확인 또는 추정되나 신라에서는 비록 굴광기단은 몇몇 확인되나 전형적 굴광판축으로 된 기단은 황룡사 중건 중금당 기단뿐이므로 백제에서 더 성행된 백제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일탑식가람배치는 백제적 가람배치라 할 수 있다. 또 백제에서는 이미 금강사에서 강당 좌우 측면에 회랑이 있고 신라에서는 8세기 중엽 불국사에 비로소 회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양식 변화가 신라에 비해 빠르다. 이는 미륵사 중원의 목탑의 심주가 그 이전의 사찰의 목탑 심주와 달리 기단 상면에 놓이게 된 점으로 짐작되는 일이나 거의 같은 시기 건립된 황룡사 9층 목탑의 심주가 역시 기단 상면에 놓인 것과 공통되는 일이다. 그러나 황룡사 9층목탑이 백제 기술자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고사기 기록을 보면 이 미륵사 중원 목탑이 황룡사 9층목탑에 영향을 미친 것을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