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토기의 편년은 6기로 구분되며 무문토기시대의 분묘는 일반적 또는 전반적으로 토광묘로 생각되지만 그 중 지석묘나 석관묘 등도 출현하고 있다. 무문토기 Ⅰ~Ⅳ시기는 씨족집단이 각지에 산재하는 사회였으며 Ⅳ~Ⅴ기에는 농업생산의 발전에 따라 취락들 간에 불평등한 발전이 생기게 되면 강력한 취락이 약소 취락을 병합하는 일도 발생하였을 것이다. 이 시기의 분묘로는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 사노리에서 발견된 장방형 수혈식석실 등이 있다.
원삼국시대의 토기는 서울시 강남구 가락동 4호주거지 출토 토기의 1양식과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마장리 출토품의 2양식으로 나뉜다.
원삼국시대의 분묘는 분명하지 않아 피장자의 성격을 논의하기 어렵다. 다만 전대의 무문토기시대의 종말 이래 상황이 진행되고 부족국가의 수장층이 토광묘라는 민중묘와 달리 석실을 축조하고 부장품을 매납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허용된다.
백제 시기를 3시기로 구분하며 전기 1양식인 가락동 2호분 토기, 전기 2양식은 석촌동 4호분 토기, 전기 3양식은 가락동 3호분 토기를 지표로 삼을 수 있다.
백제 전기의 고분 편년은 상한을 원삼국시대 2기의 법천리 2호로 삼고 하한은 백제시대 3기에 해당하는 웅진천도로 설정한다면 1기는 기원 350년 전후 시기, 2기는 400년 중심 시기, 3기는 450년 중심 시기에 해당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