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유적 및 출토유물
2-1. 사찰유적
3. 백제 판축공법 고찰
3-1. 건물지 판축
3-2. 산성판축
4. 맺음말
요약
백제시대의 판축공법은 역사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정밀한 판축공법이 아닌 성토작업의 기초는 선사시대 자연 성읍국가에서는 외부로부터의 적이나 기타 외세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연 발생적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판축공법은 산성축조나 건물지 축기부를 조성하기 위한 작업으로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판축공법은 그 정밀성이나 양상에 따라 성토층이나 準版築層 등으로 달리 구분을 하고 있으나 확실한 구분기준은 모호한 상태이다.
주로 건물지에서는 지형의 조건에 따라 주변 전체를 메우고 중요한 건물이나 그 하중에 따라 되파기를 실시한 후 정교한 판축공법으로 다져 올라가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하중에 비중을 두는 경우는 미륵사지 동탑지 축기부와 같이 큰 돌과 자갈섞인 왕모래층을 한 층씩 다져 26단까지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와 반면에 미륵사지 목탑지와 같이 하중과 지반의 성격을 고려하여 하층은 호박돌로 200cm이상 먼저 다진 후 상층 200cm는 3~5cm의 순수한 판축층으로 조성한 예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판축공법은 잔존상태로 보아 건물지보다는 토성 축조과정에서 보다 정밀하고 복잡한 架構痕迹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삼국시대 이후 판축공법은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백제 대표적인 토성인 부소산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목주공흔의 간격이나 판축층의 종단구간이 발견되지 않은 점은 통일신라 토성의 그것과 구별되고 있으나 부분적이고 부소산성의 예만을 들어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좀더 자료의 보완이 이루어진 후에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