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산유적에서 조사된 제유구의 검토를 통하여 불명의 수혈유구는 빙고와 저수시설이었으며 특히 빙고는 벽주건물군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정지산유적의 기능을 소화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따라서 빙고는 정지산유적의 성격을 해명할 수 있는 열쇠였다. 그리고 벽주건물 가운데 특히 기와 건물은 관련 문헌자료 등과의 대비를 통하여 정지산유적의 주기능인 빈전의 요체였음을 밝힐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추론을 거듭한 끝에, 정지산유적 빈전의 주인공은 무령왕비였으며, 당시 왕비의 죽음과 함께 빈소에는 멀리 중국․왜․가야(고령)․영산강유역 등 친백제관계에 있던 제세력(국가)들이 외교․조문사절로 참가하였음을 출토유물을 통하여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적대관계에 있던 고구려․신라와 관련되는 유물은 전혀 검출되지 않아 무령왕비의 상장례 과정에 당시 백제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가 여실히 반영되어 있음을 살필 수 있었다.
한편 지금까지 조사된 빙고관련 유적의 사례를 종합해 보면 고대에 있어서 빙고는 유적내에서 빙지(저수지․하천)․대고분군․빈전(고분군 속의 주거지)․저장시설․탄요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얼핏 고분에 피장된 유력자의 상장례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하드웨어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빙고와 상장례와의 관련은 비단 고대 뿐만 아니라, 고려․조선시대의 전기간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없이 유습되고, 국가적 차원 또는 지역집단의 유력자에 의하여 정비된 기구에 의하여 빙고의 축조․관리․운영과 藏氷에 필요한 과정도 장악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