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석곽묘 분포현황
1. 장수지역
2. 진안지역
3. 익산ㆍ군산지역
III. 금강 수계역 석곽묘의 성격과 시기
1. 장수지역권
2. 진안지역권
3. 군산ㆍ익산지역권
IV. 맺음말
요약
수혈식 석곽묘는 錦江의 水系地域을 따라 밀집된 분포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근래에 금강의 하류인 西海岸 地方에서도 조사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중에서 봉분의 직경이 20m 남짓 되는 高塚古墳은 금강의 최상류에 위치한 장수지역에서만 조사되었다. 그런데 장수지역은 금강 수계를 이용하여 大加耶를 비록한 加耶勢力과 교류하는데 있어 반드시 거쳐야하는 요충지로서 지리적인 잇점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 수혈식 석곽묘가 각 지역에 따라 어떤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하였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금강의 최상류인 長水地域은 석곽묘가 主墓制로 채택되어 계속적인 성장과정을 거쳐 마침내 高塚古墳단계까지 발전한 것 같다. 그런데 토기류의 조합상이나 벽석의 축조방법이 남원의 동부지역과 다른 지역성을 보이고 있어, 이 지역에는 다른 세력집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총고분의 基數가 남원의 동부지역보다 적고, 또 삼고리에서 三足土器와 같은 백제토기가 석곽묘에서 출토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의 세력집단은 남원의 동부지역보다 빠른 6세기 초엽을 전후한 시기에 백제에 복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錦江과 蟾津江의 발원지인 鎭安地域은 양쪽 수계지역이 지형상 장애물이 없을 정도로 직접 연결된 곳이다. 아직까지 高塚古墳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고, 黃山里에서는 가야계와 백제계 토기가 반절씩 섞인 상태로 석곽묘에서 출토되었다. 무엇보다도 백제계 토기류는 섬진강 수계지역인 任實 金城里나 論山 茅村里를 비롯한 충남의 동부지역에서 조사된 석곽묘 출토품과 유사한 속성을 보인다. 이것은 가야세력과 백제와의 긴밀한 교류관계를 입증하고, 동시에 가야세력이 금강의 수계지역에 交通路가 있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백제가 금강과 섬진강을 잇는 교통로를 개척하는 과정에 長水地域보다 빠른 5세기 말엽을 전후한 시기에 백제에 복속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錦江의 下流地域은 조사된 고분이 그다지 많지 않아 아직 그 성격을 속단할 수가 없다. 다만 기본적인 석곽묘의 속성은 加耶古墳과 상통하지만, 토기류는 대체로 백제계 일색을 이룬다. 그리고 석실분이 5세기 중엽을 전후하여 이 지역에 채용되면서 橫口式 石槨墓나 橫穴式 石室墳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처럼 토기류의 조합상이나 석실분의 등장은 錦江이 蟾津江 水系地域보다 다소간 빠른 양상을 이루는데, 그 시기는 대체로 熊浦里 성과를 통해 5세기 중엽 전후로 보여진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