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유적을 통해 백제 전기도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로서는 하남위례성의 위치를 단정적으로 지적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단, 풍납동토성과 몽촌토성 중 하나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굳이 지적한다면 이중 몽촌토성쪽이 더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편 이 두성의 축조는 3세기 중후반이후 석촌동지역에 밀집되어 있는 적석총 유적을 남긴 지배집단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둘째, 좁은 의미의 백제 전기도성인 협의의 한성은 북성(풍납동토성)과 남성(몽촌토성)인 두 개의 성으로 구성되었으며, 왕궁은 4세기 이후 북성 안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이에 반해 남성은 군사적인 성격이 강한 쪽으로 점차 변모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셋째, 아차산성을 중심으로 한 방어체제는 백제 도성의 최후 방어선이며 고구려가 이곳을 점유한 후에도 외곽 경비를 목적으로 보루성들을 축조한 듯하다. 한편 태봉보루성은 수축된 유적이기 때문에 이곳 출토 고구려토기의 연대와 이 성의 초축년대가 어느 정도 간격이 있는지도 문제로 남게 된다. 한편 아차산성의 나머지 보루성들에 대한 발굴조사도 유적이 날로 파괴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시급한 과제이다.
특히 태봉보루성의 석축은 대체로 할석을 7~8단 쌓고 그 위에 냇돌을 6~8단 쌓은 것인데 높이는 100cm 내외이고 가장 높은 곳은 185cm에 달했다. 이는 호성석벽으로 백제에서도 오두산성 등에도 확인되었으며 고구려의 안학궁성에서도 확인된 것으로 축성법상 중요하다.
넷째, 성벽이 경작지로 변한 풍납동토성의 보존대책이 시급하다. 현재 성안은 온통 건물들이 들어서 있지만 공동주택인 아파트를 제외한 단독주택을 경우 백제문화층이 아직 보존된 곳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에 훗날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건물 사이의 조그만 공간이라도 여건이 되면 발굴조사가 실시되어야 한다. 즉, 풍납동토성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크게 요망되는 때이다. (필자 맺음말)